[제109차 통일학포럼] 러우전쟁 종전협상과 한국전쟁 휴전협상 사이에서
- 일시: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14:00- 15:40
- 장소: 온라인 화상회의(ZOOM)
- 연사: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김규범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사회: 이유철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 주제: 러우전쟁 종전협상과 한국전쟁 휴전협상 사이에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와 김규범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모시고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러우전쟁 종전협상과 한국전쟁 휴전협상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제109차 통일학포럼을 개최하였다. ‘통일학포럼’은 2006~2020년 총 75회 진행된 ‘통일정책포럼’을 확대·개편한 것으로 현재 제109차를 맞는다. 이번 포럼에서는 이유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사회를 맡았고, 환영사와 함께 포럼의 막을 열었다.
먼저 제성훈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 가능성과 장애 요인을 설명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2022년 3월 이스탄불 협상안이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안전보장국 모델을 담은 초기 성과로 주목되었으나, 같은 해 4월 발생한 부차 학살과 러시아군의 키이우 철수로 협상 국면이 급변했다고 보았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반격의 여지를 확보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서방의 군사·재정 지원 확대는 외교보다 군사적 승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역시 국제적 고립 속에서 전쟁 지속을 통해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혔으며, 특히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의 협상 구조가 과거 냉전 시기와는 다르게 작동한다고 평가했다.
제 교수는 협상에서 핵심 쟁점이 된 ‘구속력 있는 안전보장’ 조항이 실질적으로 실행되기 어려웠음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이 전쟁 발발 시 자동 개입하는 구조를 원했지만, 이는 군사동맹 수준의 약속을 요구하는 것으로, 중립국 모델과 양립하기 어려운 요구였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양측 모두 협상보다는 전장에서의 승리를 통해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 하에서는 단기적 협상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뒤이어 김규범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정전협상을 역사적 사례로 제시하며, 현재의 러우전쟁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했다. 그는 1951년 6월 시작된 한국전쟁 정전협상이 1953년 7월까지 약 2년 이상 지속되었고, 전선의 고착화와 중공군 개입이 협상을 본격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언급했다. 협상 과정에서 군사분계선 설정, 포로 송환 문제, 정전 감시기구 구성 등 복잡한 의제들이 논의되었으며, 치열한 전투와 협상이 병행되던 ‘소모전-협상 병행구조’ 속에서 정전이 성사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김 박사는 협상 성립의 배경으로 여러 국내외 정치 요인을 함께 제시하였다. 미국 내에서는 트루먼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과 아이젠하워 당선 이후의 전쟁 종식 의지가 맞물렸고, 소련 측에서는 스탈린 사망(1953.3) 이후 흐루시초프 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한반도에 대한 정책 기조가 변화하였다. 특히 중국 역시 전후 국제질서 재편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입장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복합적 조건들이 정전 타결의 환경을 형성했다고 보았다. 이어 김 박사는 러우전쟁의 종전 가능성과 관련하여 “지금은 전환점이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현재 상황이 1951년 당시의 정전 전환 국면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군사적 패배를 인정하거나 정치적 양보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중국과 미국이라는 외부 강대국들도 뚜렷한 협상 촉진자 역할을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특히 러시아가 협상 대신 현상 고착을 노리고 있고, 우크라이나 역시 서방의 지원 하에 전장을 통한 주도권 확보를 추구하고 있어, 과거 한국전쟁의 경우처럼 국제적·국내적 절충이 형성될 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 그는 정전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전 당사자의 의지만이 아니라, 전후 질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넓은 외교적 조율과 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