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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NU IPUS발(發) 통일·평화 연구를 위하여 – 김성철 교수

칼럼  2021.02.25

SNU IPUS발(發) 통일·평화 연구를 위하여

김성철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SNU IPUS)이 올해 4월로 창립 15주년을 맞는다. 2000년 통일포럼으로 첫 발을 뗀 서울대의 통일 연구가 2006년 대학본부 직할 통일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 연구의 기회를 맞았고, 2010년 평화인문학연구 출범과 통일평화연구원 명칭 개정으로 평화연구로 융합, 확장되었다. 2020년 8월 시흥캠퍼스로의 이전으로 통일평화연구원은 명실상부하게 통일 연구와 평화 연구를 학제적으로 결합하고 국내외적으로 통일·평화 연구를 선도해야 하는 기나긴 여정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분단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숙명적으로 통일이라는 주제에 몰입해 그 방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지만, 통일이라는 현안 과제와 그 연구는 평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 과정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당위론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여기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주제들이 평화 과정인 동시에 평화 연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과 평화, 그리고 통일 연구와 평화 연구는 날줄과 씨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날줄이란 천, 돗자리, 짚신 등을 짤 때 세로로 놓는 실을 말하며, 씨줄은 가로로 놓는 실을 말한다. 날줄과 씨줄이 잘 조합되어야만 튼튼한 제품이 만들어지듯, SNU IPUS발 통일·평화 연구는 통일과 평화의 주제와 개념들을 잘 엮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통일 연구는 한반도 특히 남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한 가운데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왔으며, 중견 및 신진학자들의 연구주제와 방법론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고 내용도 심화되어 있다. 북한의 일차자료뿐만 아니라 통계적 추정에 관한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특히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등 각종 조사연구는 통계가 누적됨에 따라 국내 의식의 변화는 물론 남북한 통합에 관한 의미있는 추론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통일에 관한 연구 주제들이 보편적 가치와 학문적 일반화를 추구해온 평화 연구의 관점과 심도있게 결합되면 더욱 학문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통일 연구의 주제들은 곰곰이 따져보면 실제로 평화 연구의 복잡한 얼개에 걸쳐져 있다. 북한체제는 비교연구의 맥락 속에서 분석되면 그 본래의 특성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측면이 드러날 것이며, 인도주의와 인권 문제는 인간안보와 연계를 심화하면 정책 대안도 풍부하게 도출될 것이다. 탈북민의 문제는 난민의 정체성, 정착 및 적응 연구를 참고하고 양적 및 질적 연구방법론을 심화하면 국제화되는 탈북민 문제에 대한 분석의 수준을 높이고 미래에 대한 혜안을 제시해 줄 것이다.

또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동시에 남북한 관계를 저해하고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서, 김정은 정권의 특성이나 북미관계에 관한 분석은 물론 이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닌 전략무기감축협상, 비핵지대 설정, 냉전후 비핵화 사례와 위협감소, 새로운 억제론 등의 연구에서 통찰력을 구한다면 새로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동시에 한반도가 북핵의 발목 잡힘에서 벗어나는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책 대안을 찾는 연구를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화 연구의 보편적 개념, 다양한 접근과 분파, 경험적 연구 등은 한반도 및 통합에 관한 연구를 심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그래야 현안 문제의 해결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말이다.

통일 연구와 평화 연구가 융합되어야할 이유가 또 있다. 북한체제 및 남북한 관계와 관련된 주제를 특수성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은 이런 문제들을 이데올로기적, 당파적으로 보는 성향과 연관되어 있는바, 보편적 평화 연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주의 및 인권 문제를 북한의 특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진보적 학자 및 정치집단은 북한을 상대주의 입장에서만 보며 보편적 권리의 측면을 무시한다. 반대로 남북한의 대치 상황에 주목하는 보수적 인사들은 법치주의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 북한체제의 소멸을 인도주의 및 인권 문제의 해결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당파성은 국내 논의를 이분법에 함몰시키고 사회분열을 자극할 뿐이다. 인도주의와 인권이라는 주제는 당파성을 초월하는 가운데 다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평화 연구에서 개발을 통한 인권 접근을 통해서 분석해보기도 하고, 보호책임, 반인도적 범죄, 인도주의적 개입 등 UN 결의와 국제법에 근거한 논의에 개입하기도 하며, 이행정의에 관한 다양한 화해적 접근에서 제기되는 개념들과 연계해 분석해 볼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SNU IPUS발 통일·평화 연구는 일반화를 추구하는 학문적 임무에 충실하고 방법론을 통한 학제적 소통이라는 소명에 따름으로써 성과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SNU IPUS발 통일·평화 연구가 내용을 풍부하게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반도 관련 데이터의 집적 및 관련 조사연구가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디지털 기술 및 인공지능에 힘입어서 개방된 데이터를 정제하여 취합하고 분석하는 일과 함께, 연구 영역을 보다 확대하여 통일·평화 연구의 근간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구변화, 기후변화, 생태다양성, 재난 리스크 등은 한반도의 평화과정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사안들이므로 이와 관련한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둘째로, 가치에 관한 연구를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공존, 신뢰, 소통, 공정, 법치, 화해, 통합 등에 관한 문제의식과 심층적 논의는 남북협력이나 핵협상과 같은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지향성과 관련하여 요구되는 사안이다. 가치는 실천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실천의 장애물을 제거하여 주기도 하며, 갈등 예방과 해결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로, 관련 주제에 관한 사이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분석 영역의 확장을 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탈북자는 북한 이탈의 기획으로부터 월경을 거쳐 다양한 경로를 통과해 수용국가에 도달하며 적응 또는 부적응의 과정을 거쳐 때로는 다른 수용국가로 이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과 병행하여 여러 연구 영역이 설정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탈북자의 사회계급적 배경 및 탈북 동기, 경계선상에서의 인권, 경로 국가들의 난민관련 법제도 및 정책, 수용국가 내에서의 정체성 또는 대표성 문제 등이다. 마찬가지로 북핵 문제나 인도주의 문제에도 이런 사이클이 있으며 이를 확인하는 것이 곧 새로운 연구 영역의 개척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후속 연구세대의 양성과 이를 통한 통일·평화의 학문공동체 형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에서 말한 연구의 융합, 학제적 소통, 데이터의 집적 및 활용, 영역의 확장, 일반화의 추구 등 무거운 과제들은 어느 소수 학자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가능할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같은 원대한 과제에 몰입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연구자 층이 두터워져야 하는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각 연구 분야로 들어가면 해당 연구자의 수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더욱이 새로운 연구 주제를 위한 진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적 역량의 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통일·평화 연구가 기존 분과학문의 벽으로 인해 학문 주변부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울대는 통일·평화 연구세대의 양성을 위해 대학원 과정을 확대, 심화하여 전문 연구자 층의 확대를 기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SNU IPUS는 통일·평화 연구가 학제적 토대를 세우는 학문공동체를 이끄는데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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