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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방민호 교수

칼럼  2023.09.25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과 평화』 편집위원장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사회과학 연구와 사업을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다. 인문학, 그것도 국문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이 칼럼 공간은 아주 중요한 ‘말의 공간’인 듯하다.

어느덧 ‘586’이라 불리는 세대의 일원으로, 필자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왔다. 휴전선 이북, 우리 동족들의 사회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체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는 현실, 이 현실 속에서 연구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문학비평이나 창작에도 손을 벌리고 있는 필자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북한 체제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무는 현상이 만연해 있음을 늘 체감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계급 차별 구조의 철폐를, 그리고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북한 문제 쪽으로 화제가 옮겨가면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북한 체제를 자극하는 언사는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풍토는 한국 정치에서 고정, 안착된 지 아주 오래다. 그 뿌리가 민주화를 지상적 가치로 내세운 데 있다고 하는 정당은 한국사회의 반민주적, 비민주적, 독재적 경향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을 행한다 하면서도 북한의 전체주의, 인민들의 부자유와 권리 박탈 상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런 정치에서 통일은 북한의 비민주적 체제를 용인하기 위한 허위적 목표가 되고, 평화는 북한 집권층의 호의에나 기대어야 유지될 수 있는 불안한 가치에 머무른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북한에 대해서도 그 기준은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체제에 대해 말하면서 북한의 무서운 체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연’ 모순이고 불합리, 더 나아가서는 위선이 아니고 무엇일까?

같은 문제라도 정치와 인문학(또는 문학)은 다르게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물론 적대적인 세력과도 협상,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삶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서는 함부로 외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이나 문학에서 문제는 아주 다른 차원 위에 놓인다. 여기서는 근본적 가치가 문제를 취급하는 제일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인문학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통일과 평화를 위해 전체주의나 반인권적 상황을 외면한다고 하면 이런 본말전도도 다시 없을 것이다.

북한문학을 연구한다면서 북한의 당 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공인된 기관지들에 나타난 문학작품의 경향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중심으로 분석하는데 그치고 마는 연구 풍토도, 필자에게는 오랜 고민 대상이다. 사전 교양과 검열에 의해 창작 방침과 주제가 결정되는 메커니즘 속에서 어떤 진정한 문학이 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체제에서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그런 메커니즘을 낳고 유지하는 권력 장치와 효과에 대한 연구, 이른바 ‘어용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비판적 연구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러한 체제내적 메커니즘의 바깥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문학들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야 한다.

탈북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 점에서 필연적인 귀결점의 하나다. 통일평화연구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속에서 필자는 『국경을 넘는 그림자』(2015), 『금덩이 이야기』(2017), 『꼬리 없는 소』(2018), 『단군릉 이야기』(2019), 『원산에서 철원까지』(2020), 『신의주에서 개성까지』(2021), 『해주 인력시장』(2022) 등의 탈북작가 앤솔로지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 가운데 하나는 한국작가들과 탈북작가들의 콜라보 작업이기도 했고, 『엄마 발 내 발』(2018) 같은 시선집 작업도 기억에 남아 있다. 공동 연구서 『탈북문학의 도전과 실험』(2019)은 이러한 공동 작업의 과정에서 함께 한 연구자들의 학술적 논의를 망라한 것이다.

지금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연구와 사업 계획을 의욕적으로 펼쳐나가려 하고 있다. 연구원이 주도해서 ‘최고지도자 과정’을 만들고 통일평화를 위한 국내외의 여러 힘들의 교차로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하나일 것이다.

통일과 평화,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이 문제의 가장 중심적인 사안인 북한 문제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그리고 다른 분과 학문이 함께 다루어 나가야 할 어렵고도 복합적인 사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구성원 숫자라도 각각의 방면을 고루 발전시켜 나가려는 장기적인 전망과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힘을 합치려는 마음 그것일 것이다. 마침 세계와 한국사회 모두 때와 기운이 좋고 고민이 무르익어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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