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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탈경계 시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외연의 회복 – 이문영 연구원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2.06.19

탈경계 시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외연의 회복: ‘극동’에 대한 상상력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협력연구원

 

 

 

근대적 경계로부터의 탈주

21세기 한반도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법과 제안들은 지구화가 촉발한 거대한 변화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러한 변화 중 ‘분단’이라는 말뜻에 비추어 가장 직접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 바로 ‘경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이는 지구화 시대의 도래를 함축하는 말로 흔히 회자되는 ‘공간적 전환(spatial turn)’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때 공간적 전환이란 한편으로는 지구화시대 고유의 정보혁명, 소통형식의 비약적 발전으로 발생한 이동의 가속화와 이로 인한 세계의 상호연관성, 동시성의 강화를 의미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는 그와 같은 변화로 인하여 영토, 국경 등과 같은 전통적 공간 개념이 국민국가, 민족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나 기존의 정체성 단위와 맺는 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직접적·비유적 의미에서) 공간적 전환의 핵심은 국민국가, 민족, 인종, 젠더 등과 같은 근대적 경계로부터의 탈주, 그 경계들 ‘사이’에서의 자유로운 유동과 횡단 가능성이며, 이 지점에서 공간적 전환은 인식론적·가치론적 전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사전적으로 본디 “나누어 끊어짐”을 의미하는 ‘분단(分斷)’이 그 자체로 얼마나 구태의연한 20세기적 유물인지, 그런데도 우리에겐 어쩌면 이렇게 요지부동의 현실인지 새삼스럽기조차 하다.

이렇게 ‘근대적 경계로부터의 탈주’로 함축되는 대전환으로 인하여 더 이상 한반도 통일은 고전적인 민족동질성 회복 요구나 단일국가성 복원의 논리만으로는 결코 현실화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분단극복의 과정과 그 실현 단위 자체가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협력, 국민국가적 시야를 벗어나는 더 넓은 퍼스펙티브를 요구한다. EU의 존재나 동아시아공동체, 러시아의 유라시아공동체 추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전세계적으로 (관념적 구성물로만 존재하는) 세계국가 체제와 (이미 그 기능과 위상의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국민국가 구조의 중간단위로서 다양한 형태의 지역주의(regionalism)가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와 궤를 함께 하는 것이며, 21세기 한반도 통일은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라는 초국가적 공간에 대한 밑그림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주의가 국가주의의 단순한 확대, 더 큰 경계의 확정, 특정 지역의 특권화와 소(小)제국주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의 의미화를 둘러싼 역사적 과정과 그 정치적 메카니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주체와 정체성과 이해의 복수성(plurality)을 견지한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 H. 하루투니언, R. 윌슨)의 시각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 비판적 지역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반도 평화 및 그 미래와 관련해 제출된 한국 내 동아시아론은 채워져야 할 여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한국의 동아시아 담론, 러시아 배제돼

한국의 경우 최근까지도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와 그 미래에 대한 사유 속에 과거의 한계가 답습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진보진영의 담론적 공황 상태를 수습하며 등장한 ‘동아시아 공동체론’이나 동북아시아에 대한 구상 속에 러시아가 배제되는 경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지리적 정의 자체가 러시아의 아시아 파트, 즉 러시아 면적의 1/3, 아시아 면적의 1/5을 차지하는 동시베리아와 연해주, 하바롭스크 주, 아무르 주, 사할린과 캄차트카 반도, 쿠릴 열도 등 러시아 극동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요인은 식민시기, 해방 직전・후, 분단 이후 등, 러시아(소련)를 배제한 한국사나 한국학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간 한국의 동아시아 담론이 러시아가 배제된 채 한・중・일 삼국관계에 집중된 이유는, 1) 인종적 동질성, 문화적 친화성(한자・유교문화권)과 같은 원초적인 유사성을 공동체의 규범적 근거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2) 중국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더불어 삼국연합이 도모할 수 있는 실용적 이해가 강조되었기 때문이며, 3) 과거 냉전시기에 비교해 선명하게 각인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 추락에 대한 (성급한)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 배제의 이 세 가지 근거는 한국의 동아시아 구상이 서구중심의 근대가 설정한 경계와 구도에 아직도 종속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즉 그것은 근대적 구획의 기본단위라 할 수 있는 인종적ㆍ지리적 경계, 서구(미국) 중심의 글로벌화나 EU식 블록화에 대항한 지역이해의 보존이라는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한국의 동아시아 담론은, 물론 과거에 비해 함께함에 대한 고려가 진일보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해도, ‘초(超)’국가적 공간 형성에 대한 미래지향적 구상이기보다는, 실제적으로 한・중・일 사이의 ‘간(間)’국가적 관계 형성이라는 내셔널 패러다임의 근대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삼국의 협력과 공생(상생)보다, 견제와 경쟁(상쟁)의 논리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동아시아 구상에 있어서 중국이나, 특히 일본에서의 그것은 극동 및 그를 포함한 북아시아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적극적인 사유로 한국의 그것과 구별된다. 즉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담론이 근대적 국가 패러다임에 바탕한 한・중・일 관계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이와 더불어 극동, 북아시아 등에 대한 독자적 개념화와 그 특수한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 구상의 독창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초국가적 접촉과 충돌 속에 형성된 러시아 극동 문명

실제로 러시아 극동은 역사적으로 몽골과 중국동북부(만주) 등과 인접하여, 그 인접 국가들이 전면적으로 조우하며 그 속에서 국경, 민족,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적 개념이 실험된 역동적 공간이었다. 즉 러시아 극동을 구성하는 문명의 핵심은 그 출발에서부터 하나의 단일한 개별국가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들이 충돌하는 ‘초국가적’ 접촉과 충돌 속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러시아가 있었다. 사할린과 연해주의 역사, 사라진 극동공화국이나 만주국의 운명, 아이누와 니브히의 원주민화 과정 등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러시아 극동과 그 인접지역은 국경, 민족,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적 패러다임의 유효성이 실험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근대성의 폭력과 한계가 목도된 공간이기도 하다. 또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톡, 유즈노사할린스크, (하얼빈)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했던 한국(조선)과 러시아・중국・일본 간 문화적 접촉, 해당지역 한인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유동, 식민・냉전과 밀접히 결합된 북사할린과 남사할린의 영토주권 교체과정, 이 속에서 발생한 조ㆍ중ㆍ일ㆍ러 간 다문화 정체성 등은 이 지역에서 벌어진 초국가적 충돌과 교류, 혼종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러ㆍ일, 러ㆍ중 사이의 국경논쟁이 대변하듯이, 러시아 극동과 그 인접지역은 러시아면서, 중국이면서, 일본이면서, 조선이었고,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그 이상이었다. 그 공간은 근대적 팽창의 무한공간이면서, 그 위반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 존재하며, 공간적으로 서양과 동양 사이, 시간적으로 근대와 비(非)근대, 가치적으로 문명과 야만 사이에 탈경계적으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러시아 극동은 근대적 패러다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연한 국민국가의 질서를 갖춘 한・중・일 삼국관계에 비교할 때, 탈근대・탈경계의 21세기 초국가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에 매우 적합한 탐구대상이다.

 

푸틴, “유라시아공동체는 유럽과 아태지역 연결할 초국가적 조직체”

사실 남북관계나 한반도 통일・평화의 관점에서 러시아 극동과 관련해 보다 시사적이고 실용적인 정보와 현안을 논할 수 있다. 당장 올해 9월 8∼9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의 의미나, 이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러시아 연방 차원의 <극동-자바이칼 경제사회발전프로그램>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 2009년 <동시베리아-태평양(East Siberia-Pacific Ocean, ESPO) 송유관> (일부) 완공으로 현실화된 아태지역으로의 러시아 원유 수출, 2011년 김정일 사망 전 최후의 북ㆍ러 정상회담 시 성사된 ‘남ㆍ북ㆍ러 가스관 건설 합의’ 등의 <러시아 동방 에너지 정책>과 그 저변에 흐르는 러시아의 對아태 전략의 방향성 변화, 그것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논하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24년까지 장기집권이 우려되는 푸틴이 대선 직전인 작년 10월(그러니까 소련이 해체된 지 정확히 20년만이다)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야(Известия)>를 통해 구소련 국가를 대상으로 한 유라시아공동체(Eurasian Union, EAU) 구축의 의미를 ‘유럽과 아태지역을 연결할 강력한 초국가적 조직체’로 규정한 점 역시 의미심장한 논점을 제공할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한반도 관계에 그때그때 제기되는 이슈나 구체적인 정책들을 분석,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에 앞서 ‘극동에 대한 상상력’을 먼저 말하게 되는 것은 <21세기 녹색한반도를 위한 평화인문학>이 정책적 이슈나 정치경제적 현안과 더불어 그 이전의, 보다 구체적이며 그래서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이야기, 기억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어진 경험으로부터 평화의 역사적, 인문적, 문명적 가치와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문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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