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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이념의 소용돌이에 빠진 북한인권문제 – 서보혁 HK연구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2.06.29

이념의 소용돌이에 빠진 북한인권문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북한인권문제 정치쟁점화는 비인권적 처사

이제 좀 잠잠해진 듯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인권, 탈북자 문제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갈등 양상을 띤 상호비방이 오갔다.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 비하성 발언이 계기가 되어 여야 간에, 거기에 탈북자 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가세해 무서울 정도의 이념 논쟁을 벌였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북한·통일문제는 언제든지 이념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탈북자 보호 및 정착을 포함한 북한인권문제가 정치쟁점이 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북한인권문제를 이성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고, 정치적 이용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실효적인 인권개선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치권이 어떤 문제도 정치쟁점으로 삼아 자기 과시와 상대 비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국민들과 여론이 이를 감시하고 비판할 때 그 정도가 통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통일문제에 있어서 언론, 시민단체 등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집단이 편가르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심지어는 종교단체도 신앙으로 세속을 판단하고 구세(救世)의 길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념 갈등의 당사자로 보일 정도이니 보편적 인권은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오직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인권운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 …. 명망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사회적 지도자(집단)가 절실한 때이다.

재외 탈북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강제송환된 이들의 참혹한 인권침해, 그리고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의 어려운 적응 실태는 이제는 국제사회에까지도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리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탈북자들이 대부분인 북한 전거리교화소에서의 참상과 강제송환된 탈북자 중 일부가 사형당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오랜 기간 제3국에서 탈북자 보호에 힘쓰던 분이 추방당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숙연함을 느낀다. 또 한국사회의 심한 차별과 치열한 경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탈남(脫南)해 제3국에 떠돌거나 북한에 귀환(?)했다는 소식에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이념 논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처사 자체가 비인권적이다.

우리가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탈북자든 북한 내 인권문제든, 그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과 ‘정치적’ 활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 모두를 죄악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인권문제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보편적 문제이자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과제이기도 하다. 남한 사회가 북한인권문제에 국제사회의 다른 행위자들보다 더 각별한 관심과 역할을 보여야 하는 이유이다.

 

도구적・선택적 접근, 정치적・집단적 이익추구로 나타나

우리 사회에서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쟁의 특징은 특정 이념과 특정 정책수단이 만나 매우 뚜렷한 (혹은 경직된) 입장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집단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이판사판식의 갈등을 벌인다는 점이다. 가령, 진보 진영이 인도적 지원을 주요 수단으로 접근하는 반면, 보수 진영이 북한 정권 비난을 주 활동으로 삼는 경우이다. 물론 극단적인 구도이지만 그런 입장이 정치적 선명성을 보이고, 북한인권 관련 여론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북한인권개선 운동의 방향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토론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거나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필자가 평소 지적해온 인권에 대한 도구주의적, 선택주의적 접근 행태이다. 이는 북한인권을 명분으로 한 정치적,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이다. 보편이익이 특수이익에 사로잡히는 꼴이다. 이런 경우는 작금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북한·통일문제는 분명 순전히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념적 문제이다. 적어도 문제의 속성이 그렇다. 그렇다고 그런 속성에 붙들려 실질적 문제 해결의 길을 애초부터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길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고 넓어진다.

 

‘실질적 개선’이 주장과 행동 판단 기준 돼야

특정 이념과 수단의 짝짓기로 정치쟁점화된 북한인권문제에 타당한 방향성이 부각돼야 한다. 국제인권규범은 △모든 분야에 걸쳐, △국제 협력과 우애 증진을 위해, △개별적, 집단적 방법으로, △해당 국가와 국제공동체가 협력하여 인권을 증진해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틀을 전환할 때이다. 그 틀은 모든 주장과 행동을 실질적인 개선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인권문제를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접근하는 한 방법이다. 점점 대선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북한·통일문제가 타당한 방향성을 잡아갈지 낙관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 길을 닦아가야 하지 않은가.

 

서보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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