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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완전히 달라진 ‘김정은 스타일’ – 김병로 HK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3.01.02

완전히 달라진 ‘김정은 스타일’:
북한 신년사로 본 2013년 북한정세 및 남북관계 전망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완전히 달라진 “김정은 스타일”

북한의 금년 신년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김정일 시대에 공동사설로 운영해 오던 방식을 김일성 시대의 신년사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신문사설 형태로 전달해 오던 기존의 관행을 바꾸어 연설문 또는 담화문 형태로 전면 개편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신년사를 김일성주석이 했던 것처럼, 김정은이 직접 대주민 육성 연설로 전달함으로써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전달 방식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지난 18년간 간접적으로 신년 메시지를 전달하던 김정일의 통치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신감 넘치는 ‘김정은 스타일’의 신년사라 할 수 있다.

신년사가 연설문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공동사설 논조보다 훨씬 친근감이 묻어나는 표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친애하는 동지들!” “그리운 동포형제 여러분!” 등의 표현으로 시작하는 신년사는 공동사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연설문만의 대면적 표현과 친근함이 느껴진다. “친애하는 동지들! 동포형제자매들!”과 같은 문구들은 김일성주석이 사망하기 전인 1994년까지 신년사에서 자주 사용하던 표현들이었다. 김정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과 사랑하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는데,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이라는 표현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사용한 표현이지만, “사랑하는”이라는 감성적 언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 처음 사용하는 것으로 ‘김정은 스타일’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내용면에서도 연설문이니 만큼 과거와 같이 복잡하거나 난해한 용어들을 대폭 축소하고 공동사설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문장들을 없앴다. 경제부문에서 긴 설명으로 할애했던 ‘선행부문’이나 ‘기초공업부문’을 간단히 처리한 것이라든지, 집중해야 하는 산업부문도 “석탄, 전력, 금속, 철도운수”로 간단 명료하게 언급하고 있다. 또 모든 산업부문에서 “만부하, 만가동”해야 한다는 등의 식상한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십수년 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했던 기존의 표현방식을 반복하지 않고 연설문에 적합한 간단 명료한 문장으로 기술되었다.

북한 신년사 스타일의 파격적인 변화는 작년 리설주가 남편 김정은의 팔장을 끼고 현지지도 현장에 나타났던 깜짝등장과 부부동반으로 행사에 참석하던 행동이 보여준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리설주의 파격 등장과 신세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의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 안에서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북한주민들에게 전파될 파장을 감안하면 그 행동은 이미 북한에 기존의 관행을 파괴하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올해 신년사는 앞으로 북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파격과 변화를 예고하는 “김정은 스타일”의 시작이다.

 

신년사의 핵심화두, 과학기술과 경제

이번 신년사의 스타일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연설문 형태로 간단 명료하게 되어 있어서 그 내용도 과거 어느 신년사보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금년 북한 신년사에 나타난 북한의 정책 목표를 키워드로 표현하면 “경제와 통일”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신년사 앞부분에 올해 북한의 국가목표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과 조국통일 위업 수행”이라고 두 가지로 명확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더 중요한 핵심화두는 역시 경제문제다. 신년사에서 “경제강국 건설은 오늘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위업 수행에서 전면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적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건설이다.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북한이 선군정치에서 경제발전 쪽으로 비중이 옮겨지지 않았나 하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신년사에서 이러한 변화가 뚜렷이 엿보였다. 선군에 대한 강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그 강도는 예년에 비해 상당히 약해졌다. ‘선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횟수만 보면, 2007년 36회, 2008년 26회, 2009년 33회, 2010년 15회, 2011년 14회, 2012년 17회로 10~30여회에 이르렀으나, 올해에는 6회로 대폭 감소하였다. 대신 과학기술 담론이 부쩍 강조되었다. 과학기술에 대해 언급한 빈도수로만 보면 8회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2011년과 같은 수준이지만, 사용 강도에 있어서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실용위성’을 쏘아 올린 사건을 특대사건으로 간주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자긍심을 극도로 고조시켰고, 올해 신년사의 핵심구호를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라고 내걸었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김정은 정권 통치담론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음을 과시하였다.

물론 과학기술에 대한 강조는 2000년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줄곧 강조해 온 방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CNC 담론을 필두로 과학기술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었다. 그것은 마치 중국의 후진타오 전 주석이 자기시대를 과학기술로 이전시대와 차별화하고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경제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한 것과 흡사하다. 김정은도 생산부문에서 과학기술을 밀착시키고 설비와 생산공정을 CNC화, 무인화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도 과학적으로 세우라고 지시하며 모든 부문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과학기술로 차별화하려는 김정은 정권의 위상을 한층 격상시켜 주었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북한주민들에게 던져줌으로써 정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건설을 추진할 때 인민생활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당조직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지휘하듯이 70년대 ‘화선식’으로 전환하고 ‘김정일애국주의’ 활동을 적극 동원하라는 명령에서 올 한해 김정은 정권의 정책방향이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것을 시사해준다. 과학적 방법과 기술개발로 생산한 비료와 에너지에 힘입어 농업과 경공업을 주공전선으로 몰고 간다면 인민생활 향상에 새로운 돌파구 모색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 진행 중인 북중경협이나 러시아와의 경제협상에 관한 내용들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새로 집권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지도자가 보여주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감안하면 김정은 정권이 과학기술로 경제발전을 돌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통일의 새로운 국면전환에 대한 큰 기대

금년 신년사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통일문제에 대한 집념과 기대가 강하게 묻어나 있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되었던 남북간의 험악한 표현을 자제하는 대신 새로운 국면 전환에 대한 높은 기대를 표시하였다. 지난해에는 “역적패당의 반통일적인 동족 적대정책을 짓부셔 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벌여나가자고 했고,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금년 신년사에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언급하며 이를 위해 남북간 공동선언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무엇보다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족최대의 ‘절박한 과제’이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필생의 염원이고 유훈”이라고 설명하며 통일의 의미를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태양절 100주년 즈음부터 “통일강성대국”이라든가, 금년과 같이 “통일되고 번영하는 강성국가”와 같은 표현으로 ‘강성국가’를 통일과 연관지어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한과의 통일문제를 북한경제의 돌파수단으로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올해에는 온 민족이 단합하여 거족적인 통일애국투쟁으로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놓아야 한다며 새로운 국면전환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리행하는 것은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근본전제”라고 언급하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자 평화번영의 리정표”라고 한 대목에서는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올해 신년사는 2013년 남북관계에 청신호라 할 수 있다. 남한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박근혜 새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논의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5.24조치를 어떤 전략과 지혜로 넘어설 수 있을지 굵직한 현안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기는 하다. 북한도 유엔과 남한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위태롭게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러나 제네바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20대의 유학파 청년 김정은 제1위원장과 개혁지향적인 장성택-김경희 체제, 그리고 남북대결의 쓰라린 경험을 몸으로 체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성과 삶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2013년 한반도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전환이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1)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는 1998년과 1999년에는 각각 1회, 2회 정도로 사용되었는데 첨단기술로 단번도약을 주장한 2000년 이후에는 2000년 11회, 2007년 7회, 2008년 6회, 2009년 5회, 2010년 4회, 2011년 8회, 2012년 3회 등으로 많아졌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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