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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김정은‘홀로서기’실증할 경제의 딜레마 – 정은미 HK연구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4.01.07

김정은‘홀로서기’실증할 경제의 딜레마: 2014년 북한 신년사 분석 3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북한발 뉴스가 또 다시 세기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 사건 이후 김정은 정권의 첫 국정운영 계획을 가늠할 수 있는 2014년 신년사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육성을 통해 발표되었다. 신년사에서 언급된 표현대로 말하자면, 2014년에는 “당 안에 배겨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함으로써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일영도체계가 더욱 확고해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올 신년사에서는 지난해에 “당과 인민대중의 혈연의 유대가 새로운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인민이 충성과 효성이 가득한 ‘사회주의 대가정’에서 냉혹한 시장으로 내몰린 지도 이미 십 수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당과 인민대중 간의 유대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서의 혈연적 관계에서 돈과 권력에 기반한 교환적 관계로 변모하고 말았다.

 

3대 경제 과업으로 농업, 건설, 과학기술 천명

김정은 정권은 올해 강성국가건설에서 ‘비약의 불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경제에서 농업, 건설, 과학기술 부문의 선전을 촉구하였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 경제 분야에서 농업과 경공업이 동시에 강조되고 4대 선행부문(전력, 수송, 금속, 화학)을 앞세웠던 것과 달리 김정은 정권이 농업과 건설, 과학기술 부문을 강조하는 것은 선대 정권과 차별화된 정책노선을 제시하고자 함일 것이다.

특히, 올해 경제 분야에서 농업을 ‘주타격’으로 삼고 농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였다. 올해 농업 부문의 강조는 크게 두 가지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 맥락으로서, 신년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2014년은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농촌체제’(이하 ‘농촌테제’)를 발표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1964년 2월 25일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농촌테제’는 1950년대 전쟁 이후 추진된 급속한 산업화(일반적으로는 ‘천리마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음)로 야기된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간의 불균형 발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내용적으로 ‘농촌테제’는 첫째, 농촌에서의 기술, 문화, 사상 혁명의 수행과 둘째, 농업에 대한 공업의 협력과 농촌에 대한 도시의 지원을, 그리고 셋째로 농업의 기업적 관리를 통한 협동적 소유의 점진적 국유화를 포함하고 있다. <농촌테제>가 발표된 이후로 농업에 대한 공업의 지원과 국가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8시간 노동, 연로연금, 보조금, 무상교육과 무사상치료 등 사회보장혜택이 노동자·사무원과 동일하게 농민에게도 적용되었다. 여하튼 <농촌테제>는 김일성시대의 온정주의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제정책 중 하나이다.

 

1964년 사회주의 농촌테제 언급 이유는?

<농촌테제>가 갖는 역사성은 최근 북한의 선전매체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리더십으로 브랜드화하려고 애쓰고 있는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이하 ‘인민정치’)와 맥락이 이어진다. 김정일 사후 대중 앞에 선 김정은 제1위원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을 떠올렸듯이 외모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리더십이 갖고 있는 ‘인민성’으로서, 이것을 김정은 제1위원장은 대중적 기반을 획득하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신년사 해설기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인민정치’가 먹는 문제의 해결에 조준을 맞추고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최근 농장에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도입되어 포전담당제가 실시되고 현금분배 대신 현물분배를 받게 되었으며, 농산물 수매가격을 시장 가격에 맞춤으로써 농업증산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농촌테제>가 발표된 이듬해인 1965년 김일성은 농민의 생산의욕을 고취하고 농업증산을 위해 기본 생산단위를 기존의 작업반(100여명 이상으로 구성)에서 분조(25여명 안팎으로 구성)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즉, 농업생산에서 물질적 유인의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분조관리제가 도입된 50여년이 지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다시 분조관리제 안에 더 작은 소규모의 생산단위인 ‘포전담당제’를 도입함으로써 농업증산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주의체제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폐기되지 않는 한 수령과 인민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김정은 제1위원장 역시 선대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민의 수령’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장성택 부위원장 숙청 이후 더욱 대외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인민생활의 향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내적으로 농업증산이 어느 때보다 절실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 분야에서 건설부문이 강조되었다. 건설은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용어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마식령스키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건설 부문에서의 성과는 새로운 지도자가 자신의 치적을 쌓고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신년사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건설부문의 사업은 두 가지의 방향,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건축물”과 “인민들의 생활조건 개선을 위한 건설”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선대 지도자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물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권력과 위엄을 과시하기 건축물로 집중될 것이고, 후자는 살림주택이나 문화시설물 확충하기 위한 건설일 것이다.

그런데 관건은 건설부문에 필요한 자원의 동원이다. 대외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의 내핍경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안은 ‘내부예비’의 총동원과 ‘절약’ 밖에 없게 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절약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그만큼 북한당국도 올해 대외경제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올해 신년사에서는 3대 경제과업의 하나로 과학기술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지식경제의 강조는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현지지도를 통해 은하과학거리를 조성하는데 공을 들이는 등 전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중시기풍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청춘조국’, ‘청춘조선’, ‘원대한 포부와 이상’과 같은 온갖 수사어구를 동원하여 정치경력이 짧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듯이 과학기술 또는 지식경제의 강조는 현실성과 동떨어진 김정은 제1위원장의 리더십을 보강하기 위한 하나의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당의 영도 밑에 국가 통일적 지도 강화” … 개방 특구 언급 없어

신년사 경제 분야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경제관리방법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경제지도와 관리를 개선”해야 한다며 “여러 단위에서 창조된 좋은 경험들을 널리 일반화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는 “경제사업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어 바로 “당의 영도 밑에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강화”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1년 사이에 경제관리에서 “개선”의 맥락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지난해 11월에 최고인민회의 정령으로 발표한 ‘1개 특구와 13개 경제개발구’에 대해 신년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장성택 숙청 이후 내부적으로 경제자원분배나 경제관리 부분에서 일정한 조정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크게 벌리지 않고 내실 다지기

올해 신년사에 나타난 경제 분야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크게 벌리지 않고 내실 다지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정책은 신년사가 제시한 대로 2014년을 “강성국가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키기”에 너무나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북중경협의 활성화나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이 북한경제의 회복은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대외경제환경의 현실을 북한당국도 잘 파악하고 있는 듯 신년사에서 올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관계를 비롯하여 대외경제환경이 크게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 북한 경제가 처한 근원적 딜레마이다. 과연 홀로서기를 시작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딜레마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1) 김지영, “2014년 신년사가 예고하는 새로운 비약,” <조선신보>, 2014.1.1.

 

 

정은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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