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한반도의 꿈, 바티칸의 꿈 – 박명규 통일평화연구원장
한반도의 꿈, 바티칸의 꿈
-갑오년 새해를 맞으며-
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120년 전 갑오년은 시끄러웠다.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라도 정치체제를 근대화하려는 갑오경장과 탐관오리와 외세를 제거하고 새로운 평등세상을 열자는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고 그 틈에 지역패권을 노린 일본과 중국의 청일전쟁도 발발했던 해다. 위로부터의 개혁도 아래로부터의 변혁도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결과는 참담했다. 일본은 신흥 제국으로 팽창했고 조선왕조의 주권은 쇠락했다. 이후 특히 갈등과 전쟁, 분열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20세기 동북아의 근현대사는 어쩌면 그 갑오년으로부터 비롯했다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터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다시 맞이하는 갑오년, 새로운 한 해를 구상하는 각종 다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전에 없던 긴장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각 국가들의 새해 전망에 관심이 쏠린다. 세계적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유지에 골몰하는 미국의 전략구상과 G2 국가로서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선언한 중국의 꿈이 동아시아에서 부딪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그 배후에 있다. 보란 듯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의 일본, 불안정성과 비예측성으로 늘 한국사회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김정은의 북한, 여기에 동맹국인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표방하는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한국의 고민이 적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남북한 사이의 대립은 백해무익이라고 주장하고 ‘북남관계의 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민족분단이 남긴 깊은 상처, 그 대결구조로 인해 지출되는 엄청난 비용, 이를 틈탄 외세의 개입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남북한의 메시지는 일단 반갑다. 사실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 단절과 불신을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큰 비전 없이 21세기 한반도의 미래발전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도의 정치력과 기획력을 갖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총체적 역량을 키우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점에서 북한의 신년사는 중요한 검토대상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 3년차에 접어든 북한이 어떤 대외정책을 추구할지, 경제성장과 핵개발이라는 모순적 지향을 어떻게 조절할지, 선군시대 이래 오래된 군부의 이해와 유일영도체제, 그리고 당지배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지,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모두가 궁금한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글들에서 이 신년사의 내용과 함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것인데,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변화가능성과 부정적인 요소들이 함께 발견된다. 올 한 해 긍정적인 전망이 실현될 수 있는 계기들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평화메시지에서 오늘날 세계가 양극화와 불평등, 전쟁과 기근으로 신음하고 있음을 탄식하면서 ‘네 이웃이 어디 있느냐?’라는 신적 물음 앞에 온 인류가 진지하게 대면하고 ‘형제애’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남북한 사이에도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냐?”라고 반문하던 카인의 후예로서가 아니라 형제애에 기초한 평화와 연대의 힘이 자라나기를 기대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신뢰프로세스’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말하는 ‘북남관계의 개선’과 만나고 프란체스코 교황이 말한 진정한 ‘형제애’와 어우러져서 한반도에 새로운 혁신과 변화가 이루어지는 한 해이기를 소망하자.
박명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