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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절제된 외양, 숨겨진 ‘핵’ – 김병로 HK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4.01.02

 

절제된 외양, 숨겨진 ‘핵’:

2014년 북한 신년사 분석1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온건하고 절제된 신년사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북한의 신년사도 사설 형식이 아닌 연설문 형태로 작성되어 있어서 과거 어느 때보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이번에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낭독하였으며 TV 앞에 선 김정은은 작년보다 훨씬 여유가 있고 연설에 힘이 들어가 있었으며 말솜씨도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작년에는 연설 중간에 박수를 15회만 내보낸데 반해 올해는 30회를 내보내는 여유를 보였고, 공개된 연설부분에서는 프롬프터를 사용하기 때문인지 원고를 보지 않고 연설을 하였으며, 연설이 다 끝난 다음에는 원고를 챙겨 나가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김정은의 모습을 시종일관 방영했던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시작부분과 마무리 부분의 2~3분만을 공개하는 신중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번 신년사의 관심은 작년 연말 급작스럽게 진행된 장성택 처형으로 북한의 정국이 신년사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 중 하나는 역시 장성택 숙청이 진행되었던 2013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신년사는 이 대목에 대해 매우 가볍게 다루고 지나갔다. 장성택 사건에 대해 “당 안에 배겨 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라고만 언급하였고, “지난해의 어렵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라든가, “투쟁의 벅찬 시기에” 정도로 지난 정국을 덤덤하게 평가하였다. 작년 같았으면 “복잡하고 첨예한 정세와 련이어 들이닥친 혹심한 자연재해 속에서도”라고 하든가, 재작년이라면 “혁명의 가장 어려운 시기, 천만뜻밖에도…최대의 손실…가장 큰 슬픔” 등의 격정적 표현을 동원했을 텐데, 올해는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인지 매우 평온한 논조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온건하고 절제된 논조가 장성택 제거 이후 조성된 실제상황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혼란과 갈등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것인지 분명치 않다. 어쨌든 2014년 신년사는 과거와 달리 매우 온건하고 절제된 어조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북한의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작년 2월에 감행했던 3차 핵실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데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2010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2009년 제2차 핵실험을 평가하면서 “우리가….제2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은 강성대국건설에서 장쾌한 승리의 첫 포성을 울린 력사적 사변이었다”라고 자평하며 핵실험을 자랑스럽게 언급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기존 태도를 감안하면 올해 신년사에서 3차 핵실험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기껏해야 “억척의 신념과 배짱으로 국방과학의 첨단을 돌파하여….국방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며 핵무력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북한의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작년 핵실험 이후 심각한 마찰을 빚었던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핵문제로 긴장을 초래할 경우 북한에 불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병진노선”: 경제에서 국방으로 중심 이동

무엇보다 장성택 사건 이후 북한의 정책과 노선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장성택의 몰락이 경제적 이권을 빼앗긴 군부의 반발과 당내 조직지도부의 반격으로 초래된 결과라는 점에서 북한이 그동안 지향해 왔던 경제건설 정책이 군부중심의 선군체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염려가 컸기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 판결문에도 드러나 있듯이 장성택은 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고, 항간에는 장성택이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핵실험을 반대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던 터였다.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외형적으로는 그러한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신년사에서 ‘선군’이라는 용어가 기존의 10~30여회에서 작년에 6회로 감소한데 이어 올해에는 3회로 더 줄어들어 그러한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해주었다. 핵실험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작년 3월 31일에 발표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대해서도 “당이 제시한 새로운 병진노선”이라는 식으로 ‘핵’이라는 표현을 자제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표현은 온건하고 절제되었지만, 작년과 비교할 때 이번 신년사는 경제 쪽의 무게중심이 군사 쪽으로 이동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우선, 신년사의 구호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작년에는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라는 것이었는데, 금년에는 “승리의 신심 드높이 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비약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나가자”로 되어 있다. 즉 작년 신년사는 ‘경제강국 건설’이 화두였으나, 금년에는 경제강국이 아닌 ‘강성국가 건설’로 초점이 슬그머니 바뀌었다. 담론의 분위기도 작년에는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어 올해에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고 이를 위해 “총돌격전을 힘차게 벌려야”한다는 식의 격정적 표현을 사용했으나, 올해에는 “올해 우리의 투쟁은 인민의 아름다운 이상과 꿈을 앞당겨 실현하기 위한 보람찬 투쟁”이라고 표현하여 경제건설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그러한 절박감은 묻어나 있지 않고 밋밋하다.

온건하고 절제된 이러한 표현 속에 ‘새로운 병진노선’ 즉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행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담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년사에는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지만 이 ‘새로운 병진노선’이라는 절제된 표현 속에 ‘핵무력 병진노선’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핵전쟁’이라는 표현이 이번 신년사에 5번이나 등장했다든가, “조선반도에 우리를 겨냥한 핵전쟁의 검은 구름이 항시적으로 떠돌고 있는 조건에서….우리는…강력한 자위적 힘으로 나라의 자주권과 평화를…굳건히 지켜나아갈 것”이라고 한 대목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북한의 외교적 수사가 감춰져 있다. 무엇보다 금년 신년사에서 예년에 비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 국방부문의 언급은 핵무력 건설을 지속하겠다는 북한의 병진노선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금수산태양궁전과 당중앙위원회를 결사 옹위”하며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군대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대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방공업 부문에서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 정밀화”된 현대 장비를 생산해야 한다고 한 대목은 핵무기의 ‘경량화’를 함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 5월말 최룡해 군총정치국장의 방중 이후 핵보유나 핵개발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 온 북한이 금년 신년사에도 ‘핵’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했지만,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겨진 ‘핵’병진정책은 장성택 몰락 이후 김정은 정권의 노선이 경제건설에서 군사력 강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건설․과학기술의 성과와 절약투쟁

밖으로 드러난 신년사의 내용은 역시 경제문제였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경제건설과 과학기술은 빈번하게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매우 강조되었다. 이번 신년사에서 “과학기술은 강성국가 건설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며 과학기술발전에 인민의 행복과 조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라고 주장하며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를 12회나 반복하였다. 이는 지금까지의 신년사 가운데 과학기술이라는 어휘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작년에 은하과학자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하고 과학기술자들에게 살림집을 제공해 주는 등 과학자 우대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이런 점에서 과학기술은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핵심적 통치담론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특히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마식령속도창조’와 건설부문의 업적을 이번 신년사에서 크게 부각시켰다. 작년 한 해의 평가에서도 농업부문의 세포등판 건설과 함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은하과학자거리, 문수물놀이장, 마식령스키장 등 기념비적 창조물 건설을 열거하며 자긍심을 높였다. 아마도 이번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는 38회나 사용된 ‘건설’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그 업적을 가시적으로 남길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바로 대규모 기념물과 대형 시설 및 단지 건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탑과 개선문 등으로 상징화된 김정일 시대와 차별화하기 위해 김정은 시대를 특화할 기념비적 조형물과 건축물들을 건설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경제건설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리 개선 측면의 내용은 분권화와 같은 파격적 조치가 아니라 “당의 영도 밑에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강화”하면서 “기업체들의 책임성과 창발성”을 높이는 것에 불과하다. 장성택 처형 판결문에서도 적시되었듯이 ‘내각 중심제’ 내지 ‘내각 책임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고 경제사업의 이권문제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도 더 조율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경제관리 개선보다는 오히려 ‘절약’과 ‘정신력’을 더 강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절약이 곧 생산이며 애국”이라든가 “전사회적으로 절약투쟁을 강화하여 한 와트의 전기, 한 그람의 석탄, 한 방울의 물로 극력 아껴”쓰자는 호소는 대중동원 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대중적 호소는 ‘고난의 행군’으로 경제가 매우 어려웠던 1996년과 1997년에 나왔던 구호인데, 18년 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이러한 절약을 애국이라고 하고 ‘김정일애국주의’라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은 불확실하다.

 

남북대화 제의와 ‘종북소동’

올해 신년사에서는 작년에 이어 남북관계에 대해 북한이 매우 적극적인 대화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수령님께서….생애의 마지막 친필을 남기신 20돌이 되는 해”라는 표현으로 통일과 남북대화의 당위성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으로부터 끌어내고 있다든가, 작년에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자 평화번영의 이정표로 간주했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도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자는 정도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우리는….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를 자극할 수 있는 불필요한 조건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대신 박정희 대통령이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은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북한의 적극적인 러브콜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집권한 김정은 제1위원장도 기존의 공동선언들은 자신이 합의한 것이 아니므로 기존합의에 대한 집착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완전히 새로운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대북정책에 대해 우회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을 벌이지 말”고 “북남관계 개선에로 나와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살고 있는 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동족끼리 비방하고 반목질시하는 것은….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에게 어부지리를 줄 뿐”이므로 “북남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자고 천명한 부분에서는 진지함을 넘어 비장함을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에 집착하여 주변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남북대화 세력을 ‘종북’으로 몰아가는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박근혜 정부에 파격적인 남북대화를 제의했으나 그것은 ‘핵’병진노선을 논외로 하면서 남한의 ‘종북소동’은 언제든지 문제를 삼을 수 있음을 함의한다. 북한의 대화제의는 북한의 ‘핵’문제를 들추어 내지 말고 경제지원을 해달라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일사천리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이며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DMZ세계평화공원 조성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주요 대북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 정책의 실행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작금의 남북관계가 비록 갈등과 대립의 극점에 와 있는 듯 보이지만,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단의 가동을 멈추지 말자고 합의한 작년 8월 14일 개성에서의 약속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고 있다. 개성에서 일어난 이러한 기적이 2014년에 한 해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선군’이라는 용어는 2007년 36회, 2008년 26회, 2009년 33회, 2010년 15회, 2011년 14회, 2012년 17회로 10~30여회에 이르렀으나, 작년에 처음으로 6회로 급감하였다.
2)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는 1998년과 1999년에는 각각 1회, 2회 정도로 사용되었는데 첨단기술로 단번도약을 주장한 2000년 이후에는 2000년 11회, 2007년 7회, 2008년 6회, 2009년 5회, 2010년 4회, 2011년 8회, 2012년 3회, 2013년에는 8회 언급되었다.
3) ‘건설’이라는 용어는 2009년 19회, 2010년 28회, 2011년 28회, 2012년 22회, 2013년 24회가 사용되었다.

4) 김정일애국주의는 작년에 처음 등장하여 3회 사용되었고 금년 신년사에서 1회 언급되었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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