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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신중한 대외행보와 정책선택의 가변성 – 송영훈 HK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4.01.07

 

신중한 대외행보와 정책선택의 가변성:
2014 북한 신년사 분석4

송영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핵 실험과 연이은 도발적 행위들, 정전협정 무효 선언, 개성공단의 폐쇄와 단절 등과 같은 격렬한 대립의지를 보여주었던 2013년의 북한과 달리 2014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는 북한의 대외관계 원칙만을 선언한 채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력의 현대화와 핵전쟁의 가능성을 강조한 반면 북한이 핵 억지력을 보유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향후 대외정책방향에 대한 원칙만을 제시하면서 모호성을 유지한 것은 북한의 대내결속과 경제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는 불필요한 대외 갈등을 최소화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발전을 위한 공을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주변국과의 대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자회담 재개와 주변국 관계 개선 희망?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국방력 강화는 국사중의 국사”라고 주장하고 “강력한 총대 우에 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행복도 평화”도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대내적으로 정권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사회통제와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줄곧 견지해온 선군정치 혹은 국방력에 기초한 대결적 대외관계 등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노선임을 재차 보여주고 있다.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조해온 국방력의 중요성과 조국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정권의 대내적 정당성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언적 정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국방력 강화와 관련하여 해석상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무기의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 정밀화”를 통해 군사력의 현대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년사를 통하여 핵무기 및 핵 억지력 보유를 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북한이 핵무기의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 정밀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핵무기 보유 인정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우리 식의 현대적 무장장비들”을 더 많이 만들 것을 강조하는 것은 뒤쳐진 재래식 무기체계의 개선을 도모할 것임을 시사는 것일 수 있다. 무기체계의 현대화는 공격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군사적 개입이 있다하더라고 방어능력을 강화하고 재래식 무기에 의한 억지력을 높이기 위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도 재래식 무기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최근 동북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국의 군사력 증강 등과 같이 동북아 평화의 위협요인들에 대한 대응전략일 수도 있지만 북한 내 군부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주변국과의 대외관계 악화로 인하여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메시지의 청중은 한국 정부와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 등 모두라고 해석된다. 첫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을 한국 정부에게 요구함으로써 그 공을 넘기고 있다. 대결적 압박과 제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대화와 교류를 통해 민족 간 협력의 기회를 열자는 제의로 받아들질 수 있다. 그런데 “국제공조”와 “백해무익한 비방중상”,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의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그 진정성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주변 국가들에게 북한에 대한 투자확대 및 관계개선의 메시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그동안 남북관계의 개선이 없다면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개선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온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심어주려 하는 것이다.

 

“평화, 구걸한다고 이루어지지는 것 아니다”

북한은 유화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군사력 중심의 대결적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자신들의 선택지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북한의 입장에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지만 그것을 바라거나 구걸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고, “조선반도에 우리를 겨냥한 핵전쟁의 검은 구름이 항시적으로 떠돌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에게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임을 천명하였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 등을 염두에 둔 듯 “미국과 남조선의 호전광”들에 의한 “북침 핵전쟁연습”은 자치 한반도에서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한반도의 국제환경이 대결적인 상황임을 강조하고 당과 군의 영도아래 단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을 전달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결의 2013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 내용과 진정한 의미를 둘러싼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의 연설이 정책으로 구체화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나타난 대외관계 부문은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 정부들을 대상으로 한 대외관계 원칙의 재확인에 머무른 것이라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없이 “새로운 병진노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자주, 평화, 친선의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은 원칙만을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향후 정책적 선택의 폭을 넓히고자하는 노력의 반영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북 원칙 천명, 규범적 도그마로 흐르지 말아야

남북관계가 ‘원칙 대 원칙’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책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원칙의 상호 교환 및 이해는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한국과 북한의 공통적 이해관계를 발견하고 협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개발의 통로를 열어줄 수 있다. 따라서 원칙이 규범적 도그마로 흐르지 않고 현실적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게 하는 정책담당자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은 한국과 북한 모두 남북관계의 개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남북관계 개선의 방법과 방향이 동상이몽에 그치지 않도록 신중한 정책적 접근의 자세가 요구된다.

 

 

 

 

1) 이와 관련 북한은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첨예화되는 중미마찰,” <노동신문>, 2013.12.30.) 결과적으로 자신의 선군노선을 정당화하고 있다.

 

 

 

송영훈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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