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최후승리’를 향하여 – 김병로 HK교수
‘최후승리’를 향하여
김정은 시대 브랜딩을 위한 경제 · 통일고지 점령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6대 강국, 4대 전환, 2대 구호
2015년 북한의 신년사에 나타난 올 한해 정책 목표와 방향은 6대 강국, 4대 전환, 2대 구호로 요약할 수 있다. 6대 강국이란 사상, 군사, 경제, 인재, 체육, 통일에서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며, 그것은 다시 4대 전환으로 요약된다. 즉 ‘혁명무력건설과 국방력 강화’, ‘인민군대 후방사업’, ‘인민생활과 경제강국 건설’, ‘남북관계’에서 대전환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 과제는 다시 2개의 구호로 압축된다.
하나는 “모두 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다. 다른 하나는 “조국해방 일흔돐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이다. 전자는 당 창건 70년이 되는 올 10월까지 붙들어야 할 ‘교시’이며, 후자는 광복 70년을 맞아 올 한해 남북관계에서 견지해야 할 ‘말씀’이다.
구호는 북한에서 지도자의 통치철학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인민들은 당과 지도자가 내려주는 구호를 붙들고 위기와 고난을 견디며 미래를 희망한다. 따라서 구호를 잘 만드는 일은 지도자의 첫째가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북한의 주체사상은 규정하고 있다. 원래 북한의 신년사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그 해의 구호를 하나씩 제시하는데, 올해는 광복 70년과 당 창건 70년을 한꺼번에 맞는 중요한 해인 만큼 구호를 두 개나 제시했다.
구호 하나, ‘최후승리를 향한 총공격전’ –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서의 전환”
올해 신년사에서 두드러진 키워드는 ‘최후승리를 향한 총공격전’이다. ‘최후승리’라는 표현이 독특한데 북한 신년사에 자주 등장하는 말은 아니다. 북한에서 시장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0년대 초 김정일 위원장이 공동사설에서 사용했던 표현이고, ‘강성대국의 문’을 목전에 두었던 2011년, 그리고 ‘경제강국 건설’을 구호로 내걸었던 2013년에 사용했다. 주로 경제발전과 관련하여 이 구호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태양절 100주년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며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따라서 이번 신년사의 ‘최후승리’ 구호는 경제고지 점령이 목전에 왔음을 의미한다.
경제는 김정은 시대를 브랜딩할 수 있는 정책이다. ‘사상강국’은 김일성 주석의 몫으로, ‘군사강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공으로 돌린다면 김정은의 치적은 경제, 인재, 체육, 통일 강국건설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당연히 ‘경제강국’이 우선이다. 북한이 지난해에 이룩한 경제업적을 TV로 소개하는 부분에서 농장과 어획한 물고기, 석탄생산, 도로건설과 위성과학자 주택과 김책공대 교육자 주택, 과학자휴양소, 10월 8일공장 등 각종 건설사업을 사진화면으로 클로즈업함으로서 대형 건설 사업을 김정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러한 대형 건설 사업이 군민협동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체육경기 화면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김정은 시대를 브랜딩하는데 동원하였다.
물론 김정은 정권이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정책기조는 ‘병진노선’이다. 경제건설과 핵무기 개발을 병행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병진노선’을 견지하는 이유는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방어적 입장을 피력했다. 군력강화에 대해서도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 정밀화’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적시하던 작년과 달리 ‘최첨단무기개발’, ‘당이 제시한 군력강화의 4대전략과 3대과업’ 등으로 우회적 표현을 선택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방력 강화의 상당 부분이 ‘인민군대 후방사업’에서 획기적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어서 결국 국방력 강화도 군대의 의식주 문제 해결, 즉 경제와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정권이 광복 70주년, 당창건 70주년에 목표로 삼고 있는 ‘최후승리’는 실질적으로 경제고지 점령이라 할 수 있다.
구호 둘, ‘자주통일의 대통로’ – “남북관계에서의 대전환, 대변혁”
다른 하나의 구호는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는 것이다. “북남 사이의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의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정상회담까지 언급하였다. 지난해 12월 29일 1월 중으로 대화를 하자는 남한정부의 대북제의에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화답을 한 셈이어서 모양새가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다.
북한으로서는 올해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년사에서 ‘통일’을 18회나 언급하며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남한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지원만이 아니라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남한의 지원이 시급하다. 북한으로서는 경제강국 건설에서 최대의 걸림돌이 바로 미국과 유엔의 경제군사 제재이며 최근 심각해진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압박이다. 이러한 난국을 한꺼번에 타결할 방법이 남한의 협력을 받는 것이다. 남한과 대화 통로를 열면 경제군사 제재도 무력화할 수 있고 인권압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규모 전쟁연습’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서 대화의 실질적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신의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 수 없다”며 잘라 말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준비’와 인권정책에 대해서도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맹비난하였다.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통일헌장’에 대해서도 이미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이 있으므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정부는 대화를 무조건 수용하고 통일을 실현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으나, 북핵문제와 인권문제,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 등에 대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이다.
경제강국과 통일 대통로, 두 고지를 넘으려면
최후 고지인 ‘10월의 대축전장’에 “자랑찬 선물 안고 떳떳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경제와 통일 두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이 통일을 18회나 언급하며 남북관계의 대전환과 대변혁을 요구하고 있지만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미국에 대해서도 ‘대담한 정책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역시 기대 난망이다. 작금의 현실은 남한의 지원과 미국의 정책전환만 기대하다가는 ‘10월의 대축전장’에 빈 깡통을 들고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10월의 대축전장’에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이것이 신년사가 묻는 말이고 2015년 북한이 당면한 과제다.
핵무기는 국가의 자존심을 높여주었지만 그것만으로 축제를 즐길 수는 없다. 인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제성과가 있어야 한다. 경제성과를 획기적으로 확보하려면 무역을 증대하고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 북한이 4개의 경제특구와 19개의 경제개발구를 설치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대외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들을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국제적 고립과 압박에 직면한 북한은 남한의 경제지원이 없이는 개발구의 성공이 불투명하며 러시아와 중국 외에는 투자나 지원 전망이 밝지 않다.
이처럼 불리한 외부환경을 타개할 묘책은 ‘절약과 동원’으로 버티는 방법 외에 경제관리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하는 것뿐이다. 대규모 자본투입이 없이 생산력을 증대하려면 시장개혁을 추진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이미 포전 담당제와 기업의 자율성을 허용한 ‘6.28방침’, ‘5.30조치’로 식량과 상품의 증산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전력과 비료 생산에서도 기술개발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에 먹거리 해결의 3대 축으로 제시된 농산, 축산, 수산, 그리고 금속, 화학, 석탄 등 여러 부문에서 기술개발에 진전을 이룩하면 희망은 있다.
경제개혁과 관계개선으로 통 큰 리더십 발휘해야
이번 신년사는 김정은이 선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통치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 자리였다.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 대신 수령과 장군으로 호칭하고 지난 몇 년간 사용하던 ‘김일성-김정일주의’도 생략하여 신년사 전반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을 거의 빌려오지 않았다. 문수물놀이장과 미림승마장, 각종 주택건설 사업은 이미 김정은의 치적이 되었다. 이러한 추세라면 김정은의 이름으로 ‘10월의 대축전’을 성황리에 치르고 7차 당대회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최후승리의 대축전장’을 만들려면 대담한 경제개혁과 적극적인 남북교류로 보다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전민과학기술화’와 체육 등 인적 자원에 의존하는 정책을 넘어 과감한 경제개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남북교류와 인적 접촉에 적극 나서야 한다.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남북모두 관계개선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러한 역사적 계기에 남북대화와 교류가 시작되고 북한에서 의미 있는 경제개혁이 이루어짐으로써 남북이 모두 ‘최후승리’를 만끽하는 대축제의 장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