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휘황한 설계도’ 내놓을 당 제7차 대회 – 김병로 HK교수
‘휘황한 설계도’ 내놓을 당 제7차 대회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북한의 신년사는 한 해 동안 국가가 지향하는 바를 제시하는 정책방향으로, 연초부터 모든 기관과 주민들이 그 내용을 암기하고 숙지해야 하는 최고지도자의 지침이다. 올해에도 기존의 형식을 따라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해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당 창건 7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를 회고하며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과학기술전당, 미래과학자거리 등 대형 건설사업과 금속공업의 주체화, 자체 생산한 비행기와 지하철, 수산물과 과일 생산 등의 성과를 치하하며, “전반적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 진격로를 열어놓았다”고 평가하였다. 여자축구 등 체육 분야의 성과와 당 창건 70주년 준비에 기여한 청년들의 헌신적 역할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며 자축하였다.
올해의 방향에 대해서는 5월에 개최될 당 제7차대회를 언급하여 당대회에서 지금까지의 성과를 평가하고 종합적 경제개발계획을 시사하는 ‘휘황한 설계도’를 내놓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를 올 한해의 구호로 제시하였고, 이를 위해 전력, 석탄, 금속, 철도 등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독려하였다. 특히 농축수산과 경공업 부문의 생산을 증대하여 인민생활향상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하며 작년 당 창건 70주년 연설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을 다시 강조하였다. 이어 정치사상, 국방, 과학기술, 체육, 청년 등 여러 분야의 정책을 제시한 후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자주적 통일노력을 촉구하였다.
신년사가 여러 분야의 정책방향과 내용을 담고 있으나 최근 몇 년의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이번 신년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예년과 달리 핵이나 병진노선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둘째는 경제부문에 대한 강조가 매우 간명하면서도 돋보인다. 셋째는 남북대화와 통일을 언급하고 있으나 과거처럼 절박하지는 않다는 점 등이다.
1. 핵과 병진노선 언급에 대한 의도적 자제
최근 몇 년의 흐름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핵관련 발언과 병진노선에 대한 발언을 의도적으로 자제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당의 병진로선을 관철하여,” “최첨단무장장비들을 적극 개발하고,” “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지고”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올해는 그러한 표현을 전혀 동원하지 않았다. 물론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우리 식의 다양한 군사적 타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 생산” 등을 적시하였으나, 핵무력 개발과 병진노선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것은 상당한 변화라 할 수 있다.
핵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이러한 변화는 이미 작년 10월 당 창건 70주년 연설에서도 감지되었다. 그 자리에서 핵무력에 대한 언급이나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한 표현 대신, ‘경제-국방 병진노선’으로 대체하며 핵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자제하였다. 류윈산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해 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외교적 배려였을 것이다. 핵문제는 2013년 3월 31일 경제-핵 병진노선을 천명한 이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갈등과 마찰을 빚는 사안이다. 최룡해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2014년 한 해 동안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매우 불편하였고 작년에 개선의 기미가 보이는 듯하였으나, 핵실험·미사일 발사장면이 문제가 된 모란봉 악단의 중국공연 취소로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불편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금년 신년사에서 핵과 관련하여 문제가 될만한 발언들을 모두 자제하는 실용적 선택을 하였다. 그만큼 이제는 김정은의 입지가 공고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7차 당대회를 준비하는데 중국의 지원이 긴요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대외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파격적 행보를 내딛었다.
대신 정치사상적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사상적으로 일심 단결하는 것이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올린 것보다 더 큰 위력”이라며 핵이나 미사일 언급을 하지 않은데 대한 정당화 논리를 폈다. 김정은 시대에 부쩍 강조하는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라는 담론과 “위대성, 김정일 애국주의, 신념, 반체제계급, 도덕” 등 5대 교양, “정치사상, 도덕, 전법, 다병종” 등 4대 강군화 등 사상의식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아가 6.25전쟁 당시 평양 평천구역에 있던 지상병기공장을 평안남도 성천군 군자리 지하공장으로 옮겨 어렵사리 무기생산을 계속했던 역사를 회상하는 군자리 혁명정신을 김정은 시대 사상교양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2. 7차당대회를 위한 경제건설 강조
올해 신년사는 단연 경제건설에 대한 강조가 핵심이다. 과거에는 정치와 경제, 또는 경제와 국방 등 양비론을 유지했으나 7차 당대회를 앞둔 올해는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해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밝히며 경제문제에 집중하였다. 경제건설이 돋보이는 배경에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핵문제와 병진노선에 대한 언급이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부각된 측면도 있고, 작년에 사상, 군사, 경제, 인재, 체육, 통일 등 6개의 분야로 분산되었던 강국건설의 목표를 올해는 경제강국 건설로 집중함으로써 경제문제가 두드러진 측면도 있다. 또 “인민생활문제를 천만가지 국가 가운데서 제일국사”로 내세우며 제7차 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경제적 성과를 강조한 것도 경제문제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신년사의 내용을 보면 당 7차대회에서 새로운 국가의 목표를 내놓을 태세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는…우리 당이…이룩한 성과들을…총화하고…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7차 당대회를 계기로 종합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개발 청사진을 내놓으려면 경제발전에 대한 전망이 서야 한다. 워낙 오래전부터 “인민생활을 한 계단 더 높이고 당 제7차대회를 한다”는 것이 김일성의 교시이고 당의 확고한 방침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7차 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경제발전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주문과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로 볼 때, 당대회를 계기로 사유화·시장·자율성 확대를 포함한 획기적인 경제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강국 건설은 김정은의 지도력 확립에 대단히 중요하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은 경제발전을 통한 주민생활 향상에 달려 있다. 주민들이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설 사업이나 생활상의 변화가 확실하게 감지되어야만 그것을 바탕으로 최고지도자로 등극할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당중심으로 통치하려면 김정은이 당총비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2012년 4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당 총비서로 추대했다는 점이다. 헌법에 이미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김정일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되어 있고, 영원한 당총비서의 지위도 부여한 터라, 김정은이 당의 어떠한 지위를 갖고 통치를 해나갈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다. 제1비서라는 김정은의 당내 직위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총비서에 버금가는 새로운 직위를 신설할지 주시해 봐야 할 것이다.
3. 절박한 듯 절박하지 않은 통일과 평화
금년 신년사에서 통일부문의 내용은 작년과 비교할 때 새로울 것은 없다. 새로움이라는 측면에서는 금년 신년사보다는 2014년과 2015년의 신년사가 오히려 더 파격적이다. 201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통일관련 문건에 친필을 남긴 20주년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중대제안을 하였고, 2015년에는 분단·광복 70주년을 맞아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에 비하면 금년에는 작년 광복 70주년의 제안을 상기시키며 ‘내외 반통일세력의 도전을 짓부시’는데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선언을 되풀이하는 정도로 소극적이며 방어적이다.
현재 핵문제나 인권문제로 북한이 처한 국제상황은 대단히 불리하다. 이러한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남한으로부터의 지원과 협력은 긴요하다. 우선, 남한이 추진하는 통일준비 노력이 북한의 ‘체제변화’와 ‘제도통일’을 위협한다며 거부감을 표시하였고,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통일문제가 “가장 절박하고 사활적인 민족최대의 과업”이라고 말은 하고 있으나 절박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체제유지이며 생존이다. 이런 점에서 작년의 “북남고위급긴급접촉의 합의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거나 대화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며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공조’를 구걸”하거나 “청탁하는 놀음”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이라고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한국의 대북압박 활동을 제어하려는 데 있어, 방어적이며 수세적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북한이 미국에 수차례 요구했던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도 신년사에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평화협정에 대한 요구를 하는 대신, 작년의 노력을 평가하는 방식 정도로 언급하였을 뿐이다. 즉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할 데 대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정세를 긴장격화에로 몰아갔으며”라는 평가로 대신하고 있다. 작년 8월 DMZ에서 벌어진 사건처럼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긴장과 위기가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이를 빌미로 미국과의 협상이나 평화협정을 하겠다는 기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7차당대회를 치르고 경제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만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