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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자력자강으로 버티기 – 김병로 HK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17.01.05

 

자력자강으로 버티기: 2017년 북한 신년사 분석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북한은 구호로 통치하는 나라이며 신년사 역시 그 안에 1년 동안 주민들이 외우고 붙들고 나가야 할 구호가 들어 있다. 2017년에는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를 한 해의 구호로 제시했다. 국제적 대북제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자력자강’으로 난국을 극복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실험과 각종 군사력 과시를 통해 미국·한국 주도의 군비경쟁에 대응하는 한편 대주민 안보효과를 바탕으로 대내 경제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며 버텨나간다는 전략이다.

 

1.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금년 신년사를 지배하는 하나의 담론은 지난해에 있었던 당 7차대회이며 2017년을 규정하는 내용도 한마디로 당 7차대회다. 2017년을 “당 제7차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획기적 전진”의 해로 규정한 데서 잘 드러난다. 그만큼 작년 5월, 36년 만에 개최된 당 제7차대회의 의미는 막중했다. 거기에서 나온 결정이 바로 ‘휘황한 설계도’로 내놓았던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이다. 2017년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첫 과제로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 수행에 총력을 집중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신년사의 마지막도 “모두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펼친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따라 광명한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진군해 나아갑시다.”고 끝맺음을 한 것을 보면 금년 신년사의 초점이 당7차대회에서 제시한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에 모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발표하지 않고 경제 개발 5개년 ‘전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5년 후의 청사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목표달성이 불확실하고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경제총량 목표와 청사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개적인 목표를 제시했다가 달성하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지도자 이미지 손상을 우려하여 섣불리 목표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북제재가 국제적 ·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를 살리고 주민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외부환경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향후 5년간 어떻게 경제 발전을 구가하느냐가 김정은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시험대가 되는 만큼 김정은 정권은 올 한해 노력동원과 제한적 인센티브 부여를 통해 경제성장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 주택건설은 노력 동원으로 가시성이 큰 부문인데다 민심도 얻을 수 있는 부문이어서 적극 추진할 것이다. 70일 전투와 200일 전투로 이미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었고 북부지역 수해피해복구 건설로 지연된 ‘려명의 거리’가 금년 4월 완공되고 원산지구 건설이 진행되면 미래과학자거리에 이은 또 하나의 경제치적으로 자리 매김 될 것이다. 에너지와 선행부문에서 기본 생산을 유지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을 생산에 접목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농업과 수산업 등 먹거리 생산, 지역주민 생활을 위한 경공업, 산림조성 사업 등 “5개년 전략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총돌 격전”이 2017년 신년사의 요체라 할 수 있다.

 

2. 핵무력 증강과 선제공격 위협으로 버티기

신년사에 나타난 두 번째 특징은 핵무력 증강과 선제공격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작년 초 실시한 첫 수소폭탄 실험과 핵탄두 폭발실험, 그리고 대륙간탄도탄 실험발사준비가 마감단계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며 “동방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솟구쳐 올랐”다고 평가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지속되는 한 핵무력 증강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피력하였다. 경제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핵무력 증강의 길 밖에는 없다고 판단하고 핵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금년에 특히 ‘선제공격’에 대한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ICBM 개발이 임박해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트럼프는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ICBM 발언을 일축했다. 트럼프의 이 말이 북한의 ICBM 개발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북한의 ICBM 개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트럼프가 정보기관에 요청한 첫 기밀 브리핑이 북핵관련 사안이었다고 하니 미국정보당국이 파악한 자료를 근거로 발언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조너선 맥도웰 박사가 북한이 ICBM을 무기화하는 데는 5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시기상조론을 제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가 이처럼 북한 신년사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핵문제가 미국의 중요한 안보이슈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가 대선기간 중에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과 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김정은의 신년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므로 올 상반기에 북미 간 대화가 적극적으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 선 행동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협상해 올 때까지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서 특별한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현 상황을 타개할 적극적인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에 따라 한반도 안보상황은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3. 전민족적 통일대회합

세 번째로 관찰되는 대목은 통일문제에 관한 부분이다. 분단·광복 70년이던 2015년에 매우 구체적이고 파격적으로 제안한 내용들에 비하면 인상적이지 않다. 당시에는 통일헌장·통일대강을 언급하고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였다. 그러나 금년에는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만들자는 기존의 입장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대신, 통일전선 차원의 대남접근을 다방면으로 적극 전개할 가능성을 엿보였다. 작년 하반기 남한에서 진행된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해 “지난해 남조선에서는 대중적인 반정부 투쟁이 세차게 일어나 반동적 통치기관을 밑뿌리째 뒤흔들어 놓았으며 보수당국에 대한 쌓이고 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올해 남한에서 ‘반통일세력’이 물러나고 북한에 협력적인 ‘통일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명하며 반통일세력 분쇄를 언급한 대목은 북한붕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던 박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남한에서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는 시기인 만큼 북한은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현 북남관계를 수수방관한다면 그 어느 정치인도….민심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한 대목에서 다음에 들어서는 남한의 정권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기를 기대하였다. 7.4공동성명 45주년, 10.4선언 10주년 등을 언급하며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제안하고 “전민족적 범위에서 통일운동을 활성화해 나가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올해 남한의 정세에 변화가 생긴다 해도 그 변화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으로 가시화되기에는 시간도 필요하고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차기지도자로 대권에 도전하는 각 캠프는 당면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어떤 전략과 지혜로 풀어나갈지 한반도 통일과 평화의 구상을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투트랙으로 접근하며 남북대화에 임한다면 올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먼 길 가야할 지도자의 겸양지덕

마지막으로, 올 신년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신년사 말미에 김정은이 자신의 개인적 소회를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해를 보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해의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하는 바입니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파격 그 자체다.

북한지도자 덕목 가운데 인민들 속으로 들어가 인민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신년사에 이처럼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드러낸 것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기존에는 대체로 당과 나라의 일꾼들은 ‘인민의 참된 심부름꾼’으로 살며 일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이 자신을 일꾼의 한 사람으로 동일시하며 파격적 방식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집권 6년차를 맞는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간 것은 북한 내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당과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숨은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엄청난 홍수피해와 식량부족, 만성화된 경제침체의 상황에서, 아무리 정치적 카리스마와 정당성을 확보한 김정은이라 할지라도 겸양지덕의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면 북한주민들의 민심을 얻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끌고 가야할 김정은으로서는 지나치게 과대포장 된 수령이미지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대내외 환경이 썩 좋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생존전략일 것이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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