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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제7차 겨레말큰사전 편찬회의를 다녀와서 – 권재일 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6.10.17

 

제7차 겨레말큰사전 편찬회의를 다녀와서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2006넌 9월 20일 오후 4시 54분, 우리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비행기, “걸상띠를 매시오”라는 안내문이 인상적이었던 비행기가 평양 순안비행장에 닿았다. 초가을치고는 무척이나 더운, 그러나 맑은 가을하늘이다.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장인 문영호 선생을 비롯한 북측 학자들이 마중나왔다. 몇 달만에 다시 만났지만 여전히 반갑다.

 

우리 일행은 제7차 겨레말큰사전 편찬회의에 참석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이다. 나는 단일어문규범 작성위원장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함께 추진하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이 사전의 편찬은 말 속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얼을 찾아 우리말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고, 아울러 통일의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다.

 

대동강 가운데 자리잡은 양각도호텔로 가는 버스가 평양 시가지를 지나갔다. 건물마다 걸린 표어와 사진은 평양 분위기를 실감케 한다. 퇴근길이라 사람들이 북적댄다. 화사한 옷, 남루한 옷, 걸어가는 사람, 전차 기다리는 사람, 머리에 잔뜩 이고 가는 사람, 등짐지고 가는 사람 ···.

 

“우리 나라 력사를 옳바르게 아는것이 중요하다.” 이 문장은 북한에서 쓰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남한 어문규범에 따라 쓰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에 대하여 북한에서는 단어 첫소리에 ‘ㄹ’을 허용하여 ‘력사’라 쓴다. ‘올바르다’를 북한에서는 ‘옳바르다’로 표기한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우리나라’를 붙여쓰나, 북한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띄어쓴다. 그러나 의존명사를 북한에서는 ‘아는것이’처럼 붙여쓴다.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하나씩하나씩 살펴보면 남북의 표기법에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를 줄여 통일된 표기법을 세우려는 것이 바로 단일어문규범을 작성하는 일이다. 이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통일 국가의 바람직한 글자생활을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한 과제이다.

 

잘 알다시피 남북은 사전 올림말의 배열 순서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올림말의 배열 순서를 단일화하는 것은 공동사전 편찬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우리 위원회가 맨 먼저 합의한 것이 바로 자음과 모음의 배열 순서이다.

 

글자의 배열 순서에서 남북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첫소리 순서에서 ‘ㅇ’ 위치이다. 남한에서는 ‘ㅇ’의 순서가 ‘ㅅ’ 다음에 놓인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자음 글자가 다 끝난 다음에 ‘ㅇ’ 이 놓인다. 이것은 남북이 사전을 찾을 때 가장 크게 차이 나는 점이다. 예를들어 ‘웬만큼’이란 단어를, 남한 사전에는 사전 중간쯤에 놓여 있지만, 북한 사전에는 사전 맨 끝쯤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단일화하기란 쉽지 않다. 양측 모두 합당한 언어학적 이론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위원회가 열린 첫 회의에서 남한의 순서대로 ‘ㅅ’ 다음에 ‘ㅇ’을 두는 것으로 의견을 조정할 수 있었다. 둘째는 첫소리에 쓰이는 겹자음 ‘ㄲ, ㄸ, ㅃ, ㅆ, ㅉ’ 위치이다. 남한에서는 ‘ㄱ’ 다음에 ‘ㄲ’이, ‘ㄷ’ 다음에 ‘ㄸ’ 등이 놓이는 반면, 북한에서는 ‘ㅎ’까지 모두 끝나고 ‘ㄲ, ㄸ, ㅃ, ㅆ, ㅉ’이 차례로 놓인다. 이것은 북한 순서대로 하기로 하였다. 셋째는 모음 순서이다. 남한은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순서이고, 북한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 순서인데, 남한 순서를 바탕으로 조정하였다.

 

우리 위원회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과제에는 또한 띄어쓰기와 사이시옷 표기가 있다. 완전히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과제도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보았다. 앞으로 계속 논의할 과제로는 두음법칙, 외래어 표기, 문법형태 표기 등이 있다. ‘역사’와 ‘력사’의 표기를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가?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과제일지도 모른다. ‘되었다’와 ‘되였다’, ‘무엇일까’와 ‘무엇일가’와 같은 문법형태 표기는 어느 쪽으로 단일화하면 좋을가?

 

회의가 열린 양각도는 양의 뿔모양을 하고 있어 붙인 이름이라 한다. 호텔과 국제영화관, 그리고 작은 골프장만 있는 섬이라, 대동강가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의 회의와는 달리, 평양에서의 회의는 북측 편찬위원들과 회의시간, 접촉 기회가 다소 제한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권재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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