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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두만강 국경에서 본 핵실험 후의 북한 – 정근식 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6.11.24

 

두만강 국경에서 본 핵실험 후의 북한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통일이나 북한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늘 미국이나 북한의 의도와 역량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균형있게 사고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북한이 10월 9일 핵실험을 하기 일주일 전 쯤, 과연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가가 화제로 떠올랐을 때, 나는 북한에 그럴만한 역량이 없다고 생각하여 아마 핵실험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가 그렇게 예측했던 것은 일년전 평양근교의 한 농기계공장을 둘러보고 얻은 감상 때문이었다. 농기계의 조그만 부속품 하나도 변변히 없어서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핵실험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가 나에게 있었다. 그러나 나와 친한 모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사일 실험에 뒤따르는 논리적 귀결을 중시하였다. 결국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통일이나 북한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소망하는 것과 실제로 전개되어 가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가로 놓여 있다. 단편적인 관찰로 보다 큰 명제를 함부로 추론할 수 없다는 사실, 사회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인, 자신의 소망과 객관적 사실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깨우침을 얻었다.

 

그 후 나의 빗나간 예측 때문에 핵실험 이후의 북한의 동향이 더욱 궁금해졌다. 마침 중국의 연변으로 가서 두만강 국경의 북한지역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10월 21일이니까 핵실험 이후 채 이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함경도 국경지방에서는 금강산이나 평양 여행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북한쪽 산과 중국쪽 산들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데, 그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개간지 때문이다. 북한의 어려운 사정은 나무가 별로 없는 민둥산일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산을 깎아 만든 밭의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함경도 국경의 산들은 야트마한 야산이 아니라 제법 높은 산들인데, 그것도 산 아래가 아니라 산정이나 산 허리 부분을 깎아냈다. 이 개간지에는 주로 옥수수를 심는데, 수확한 옥수수를 지붕에서 말리는 모습이 선명했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는 총 14개라고 하는데, 연변지역에는 삼합, 개산툰, 도문 등에 이런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마을들은 모두 일찍 찾아온 겨울 때문이었는지 인적 없이 황량했고, 내가 본 세 개의 다리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삼합에서 도문으로 가면서 두만강 건너의 북한 마을과 산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을 걷이가 거의 끝나가는 모습에 간간히 채소밭에서 공동작업을 하는 북한 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행보는 핵실험이라는 큰 사건과는 무관한 듯 했지만, 국경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불쾌함은 분명한 듯 보였다.

 

연변에서 만난 ‘조선족’들도 북한주민들의 어려움을 자세히 설명했고, 또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당국에 대한 실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크게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모습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탈북자 중에서 주로 범법자들을 붙잡아 수용하는 시설의 경계가 삼엄했고, 또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마약밀매혐의자들을 체포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 핵실험이후 미국이나 일본의 반응보다는 중국의 반응이 더 초점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북한체제의 중국의존도, 특히 경제의존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중국의 태도가 북한의 태도변화에 실질적인 독립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핵실험 후 중국은 신속하게 북한에 대한 경고와 제재를 취했다. 이것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북한은 핵실험 한달 후에 6자회담 복귀의사를 나타냈고, 미국은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는 평화체제구축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런 변화이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중국의 선택폭은 커지는 반면, 한국의 선택폭은 점차 줄어드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고민을 안겨준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한국의 보수층들은 햇볕정책이 북한 핵실험을 가져온 원인이므로 이를 거둬 들어야 하며, 나아가 북한 붕괴가 한국의 재앙이라는 전제도 의심할만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을 매개로 한 남북관계와 미사일 및 핵을 매개로 한 북미관계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북미관계의 변화에 한국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 또한 매우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도 큰 고민거리이다.

 

북한 핵실험후 한달의 기간은, 나에게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삼자 관계 속에서, 또는 중국까지 포함하는 4자 관계 속에서 각 국가가 취하는 정책의 의도와 역량을 정확히 읽어내는 혜안, 다른 나라들간의 관계가 한 나라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측정하는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간이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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