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유라시아 공동체 – 하용출 교수
유라시아 공동체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최근 러시아에서 한 학자가 시베리아-극동 개발에 한국과 손을 잡아야 된다는 주장을 해서 주목을 끈 바가 있다. 이 학자에 따르면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남북한인들 3천만명을 이주시키자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한민족을 동북아에서 가장 비적대적인 대상으로 인식해왔고 이런 인식은 19세기 말 이후 한인들의 이주에서도 잘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21세기 초엽에서 러시아 학자가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고 외무성이 이를 인정하는 사례는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러시아 학자의 주장이 러시아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현재 우리가 동북아에서 처한 상황과 관련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해방 이후 대서방 대 해양 외교에 모든 운명을 걸어 온 우리로서 유라시아 대륙은 그동안 심리적으로 잊혀진 곳이서 우리의 생존 전략 속에 이 방대한 지역을 어떻게 고려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금까지 심각히 고려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10여년간 모든 국가적, 지역적 관심이 북한 핵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유라시아를 포함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더우기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를 과거사에 머물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동북아중심적 사고라고 나와 있는 것은 지난 두 정권에서 동북아 중심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고는 있으나 주로 경제 중심적이거나 우리 중심적이어서 지역전체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개념이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는 실정이다.
이런한 우리 중심적 사고의 보다 중요한 배경에는 유럽과 동북아의 비교를 통해 동북아는 유럽과 같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의 숙명론”이 지라잡고 있는 것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동북아라는 지역협력체가 불가능하다면 우리의 이익이라도 챙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 경제중심적 사고는 그 실효성도 문제이거나와 장기적으로 우리의 지역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러시아에 나온 한반도 우선론도 이런 관점에서 새롭긴 하지만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우리의 극동-시베리아 진출이 우리에게 자원경제적 차원에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양자적 접근이 가져 올 지역정치, 안보적 함의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과 일본의 반응은 물론 유라시아 다른 나라들의 반응도 중요한 변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의 생존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유라시아 전역이 같이 생존할 수 있는 공동번영안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학자의 신선한 제의를 우리는 한 차원 높게 승화 시켜 공생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이 오늘과 유라시아의 오늘을 비교하여 우리 지역의 미래는 유럽과 같이 될 수 없다는 비관적 인식을 불식하는 것이다. 역으로 이 지역이 유럽과 비교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 내어야 한다. 일례로 에너지 자원은 유럽에 없는 중요한 협력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시베리아-극동을 자원의 착취 대상에서 공동 번영의 수단으로 접근하면서 지역개발을 위한 공동의 협력 방안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 문제가 안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역사적 문제로 일본, 중국과 벌이고 있는 지식의 싸움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생존하기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인 목표를 가지고 지적인 리더쉽을 발휘해 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북한 핵문제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하면서 미래 유라시아 공동체 구상의 시작이 한국에서 시작된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에 이어 동북아의 장 모네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으면 하는 기원을 새해에 맞추어 해본다.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