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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국제선과 국내선의 간격 – 박명규 소장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7.03.29

 

국제선과 국내선의 간격: 평양방문 소감

 

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장

 

 

지난 3월 22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이번 방문은 전세기로 서울에서 평양으로의 직항로를 이용하게 되어 중국을 통해 가던 때에 비해 북한이 훨씬 심리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을 출발하기 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김포공항행 버스를 탈 때 내가 이용할 청사가 “국내선인지 국제선인지”를 운전기사가 물었다. 미쳐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어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평양을 간다’라고만 대답했다. 기사 역시 나처럼 헷갈린 것은 당연했고 적어도 평양행 비행기가 국내선은 아니리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국제선 청사에 내렸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양이 여느 외국과 꼭 같은 지역이 아닌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분명 평양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기가 어려운 외국 같은 곳이지만 국가간 여행에 필수적인 여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외교통상부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발행하는 여권 대신 통일부가 발행하는 ‘방북허가증’으로 가는 곳이며 북한측 역시 우리의 여권이나 비자보다는 자신들의 초청명단을 중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여권과 방북허가증을 대비해 보노라면 북한이라는 곳의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성격을 다소나마 가시적으로 느끼게 된다. 방북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품이 적지 않고 그 비용 역시 일반적인 국제여행의 기준과는 크게 다르며 개인별 자유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북한은 국내/국제의 구분을 넘어서는 ‘제3지대’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북에서 접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미묘한 어긋남을 느낄 기회는 적지 않았다. ‘우리 민족끼리’나 ‘우리는 하나’라는 목소리의 다른 한편에서 ‘남측’과 ‘북측’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정직하게 반영되는 실질적 경험이었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매개로 해서만 의사소통이 되는 불편함 속에서도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성을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 ‘국제적’ 만남에 비해, 같은 언어와 음식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게 만드는 이 미묘한 관계– 이 특수한 성격이야말로 반세기 분단의 역사가 빚어낸 결과이자 앞으로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현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1992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다. 남과 북은 국제법상 각각 유엔에 가입한 독자적 국가로 인정받으면서도 서로는 개별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일을 최고의 미래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적대감과 이질성을 드러내고 있다. ‘동포’라는 동질성을 앞세우면서도 끊임없이 ‘남측’과 ‘북측’을 의식해야 하는 관계이며 같은 고대사를 공유하면서도 해석상의 차이가 명료한 특이한 관계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남북간의 관계를 형식논리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의 논리, 좋은 의미에서는 변증법적이고 복합적인 관계이지만 일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헷갈리고 이중적이며 때론 모순적인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특수한 관계는 앞으로 남북한의 교류가 확대되면 좀더 자연스러워질 것이고 육로가 열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게 된다면 일반적인 국내여행과 유사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잘 풀린다고 해서 평양행 비행기가 제주행 비행기처럼 국내선 청사에서 출발할 수 있을까? 먼 미래라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특수관계’라는 것과 ‘일시적’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특수관계의 규정력과 관성이 매우 강해서 특수성 자체가 제도화되고 오랜 동안 존속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국내여행도 국제여행도 아닌 이 특수한 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는 이 관계 속에서 어떤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를 곰곰 생각했다. 이 물음은 일차적으로 여행의 성격에 대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성격과 방향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도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간의 여행길을 국제여행으로 간주함으로써 현재의 분단질서를 그대로 옹호하는 인식도 찬성하기 어렵지만 이처럼 독특한 남북관계를 무시한 채 당장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로이 오가는 국내여행처럼 간주하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남북간의 ‘특수성’ 그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기보다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가진 긍정적 요소들을 찾아냄으로써 우리만의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남북의 여행길은 국내여행처럼 자유롭고 편안하면서 동시에 국제여행처럼 서로의 독자성을 존중하며 배우려는 고차원적 상호관계를 동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6자회담의 성공적인 진전이 그런 길을 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국내선과 국제선의 간격을 현저하게 좁혀나가는 세계적 추세와 더불어 남북의 여행길도 새로운 단계로 성숙해가기를 기원해본다.

 

 

 

 

 

 

 

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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