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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2.13합의 ‘계속’ 이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 – 정은미 선임연구원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7.07.12

 

2.13합의 ‘계속’ 이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핵 6자회담이 오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북한당국이 지난달 25일 BDA문제의 종결을 공식적으로 선언한지 불과 한달도 안돼서 2.13합의의 2차 이행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6개국이 다시 모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7월 9일 특별이사회를 열어 북한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을 검증할 사찰단 파견안과 390만유로에 달하는 사찰 특별예산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그리고 IAEA 사찰단이 이번 주말에 드디어 북한에 들어간다. 이번 사찰단의 방북은 2002년 북한에서 추방된 후 4년 5개월 만에 다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돛을 단 2.13합의 이행선은 모처럼 쾌속이다. 지난 7월 3일 방북한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BDA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돼 (6자회담의) 장애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6자회담 틀에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함으로써 2.13합의 이행에 대한 밝은 전망을 예고했다. 북한과 미국 모두 그동안 BDA문제로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기 위해 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유월 내내 이상고온과 장마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변화무쌍의 연속이었다. 2005년 9월 17일에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돈세탁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후 BDA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공방전은 장장 9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달 25일 BDA에 동결되었던 북한 자금이 러시아의 달콤방크은행을 거쳐 조선무역은행으로 송금이 완료됨으로써 BDA 문제는 공식적으로 종결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벌어졌던 위촉즉발의 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새삼스럽지만 여전히 아찔하다. 북한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급기야 10월에는 설마 했던 핵실험까지 감행하였다. 이 후에도 얼마동안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금융제재 해제를 둘러싸고 북미간의 샅바싸움은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북미간의 ‘벼랑끝 전술’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진정으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원하지 않았으며 미국 부시정부를 향한 국내외의 압박이 마침내 지난 1월 베를린에서 북미를 마주 앉게 했다. 그리고 2월 13일에 다시 모여 앉은 6개국은 북핵 불능화와 보상,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로드맵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초 4월 13일자로 예정되었던 2.13합의의 초기 이행은 BDA 문제의 미해결로 또 다시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요구하였다. 미국은 BDA 문제가 기술적 문제일 뿐이라며 곧 해결될 것이라고 큰 소리쳤지만 여러 차례 공수표만 날려 신뢰를 잃었다. 미국은 북한에게 테러지원국과 적성국의 딱지를 계속 부쳐 놓은 채 북한의 돈-미국 언론은 소위 ‘더러운 돈’이라고 표현했다-을 받아줄 은행을 찾는 해프닝을 벌였다. 하지만 집중적인 감시를 받을 게 뻔한 북한 돈을 받아줄 은행은 결코 없었으며, 다급해진 미국은 결국 애국법 위반이니 돈세탁 공모라느니 하는 국내의 따가운 비판을 무릅쓰고 러시아의 협력을 통해 BDA 문제를 둘러싼 어둡고 긴 터널을 마침내 빠져나오게 되었다.

 

북미간의 BDA 문제 해결 과정은 단순히 북한의 국제금융활동에 대한 제재와 해제라는 경제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모색되는 외교적 해결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점은 지난 달 25일 BDA에 동결되어 있던 북한 자금이 마침내 북한의 요구대로 송금이 완료된 직후 있었던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의 기자 회견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변인은 “우리가 동결자금 문제를 중시하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의 집중적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BDA 사건은 북미 간에 적대적 관계의 청산과 관계정상화가 전제되지 않았을 때 북핵의 불능화 과정을 포함한 2.13합의는 ‘행동’이 아니라 ‘말’로만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점이 바로 북한이 그토록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의 진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당초 약속했던 BDA 문제의 선(先) 해결을 행동으로 보여주자 북한 역시 곧바로 2.13합의 이행의 행동에 들어갔다. 북한은 송금이 완료된 6월 25일 이튿날부터 평양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과 핵시설 가동 중지 및 검증 감시와 관련한 협의를 할 것이라며 IAEA 사찰단을 초청했다. 그리고 6월 28일 올리 하이노넨 사무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IAEA 실무대표단이 영변 핵시설을 방문한 후, 드디어 북핵 사찰단이 7월 14일 방북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2.13합의 초기 이행 약속이 실현되자 그에 따른 보상의 약속도 곧바로 뒤따랐다. 먼저 우리 정부가 주기로 약속했던 쌀 40만톤 중 3천톤의 쌀을 실은 첫배가 지난 달 군산항을 출발했다. 또 IAEA 사찰단 방북 시기와 맞춰 중유 5만톤의 첫 선적분도 곧 출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 약속 이행에 대해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쌀 차관이 2.13합의 이행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도적 성격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렇다면 지난 5월말 개최되었던 제21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파행으로 끝나게 된 실질적인 이유인 우리 정부의 대북 쌀 차관 제공 보류 방침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는지를 정부는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한편 6월 21일~22일 동안 북한을 방문하여 북핵 해결과 관련된 포괄적인 이행 조치에 대해 논의하고 돌아온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갖은 기자회견에서 내년에는 북한이 이미 생산한 핵연료와 핵무기 또는 폭발장치를 포기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이룩하고 이러 교차 승인과 관계정상화에 도달하는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힐 차관보는 영변 핵시설 폐쇄 등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달 말에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최종적으로 북핵 불능화 단계에 접어들면 남북한과 미국, 중국 4개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 보다 광범위한 동북아 안보 포럼 결성 협의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는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역시 7월 11일 한 강연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과정을 올해 안에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평화체제와 북한의 비핵화는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로 동시에 병행해 다룰 수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지난 달 미국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제시했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전망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버시바우 미국대사는 또 “평화체제는 일종의 패키지이며 여기엔 한국전쟁 종전 선언과 남북 간 국경선 설정, 1992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실행, 군사력 투명성 제고가 포함될 것”이라며 “국경선 주변 부대·장비 배치의 통제 등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도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등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련된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제시했다.

 

오는 18일에 열린 6자회담은 결국 ‘북핵 불능화’와 ‘관계정상화’’ 두 축으로 이뤄질 것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 것처럼 북한에게는 핵의 완전한 불능화는 북미의 관계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결국 양국이 원하는 최종 목표는 동일한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2.13합의의 ‘계속’ 이행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국들이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약속을 제때 정확히 지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국들 간의 신뢰의 두께는 자연스럽게 층층이 더해갈 것이며, 그리고 최후에 북핵 불능화, 관계정상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모두 실현되어 6개국은 모두 승리자가 될 것이다.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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