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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6자회담의 진화 – 김근식 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7.08.12

 

6자회담의 진화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6자 수석대표회담 평가

지난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 동안 북핵 6자회담이 진행되었다. BDA 문제 해결과 영변 핵시설 폐쇄 조치 이후 다음 단계의 상호 행동을 논의하기 위한 수석대표간 회담이었다. 그런데 이번 회담의 결과를 놓고 우리 사회에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회담에 참가한 미국 측도 국무부 논평을 통해 회담이 유의미했음을 밝히고 북측 역시 회담 대표인 김계관 부상이 직접 나서 회담의 성과에 대해 만족함을 표현했는데도 유독 우리 사회에서만은 회담의 한계를 지적하는 소리가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핵시설 폐쇄 이후 조치인 불능화 단계에 대해 북한이 명확한 시한을 못박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빈약한 성과였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불능화의 시한과 구체적 로드맵이 도출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형식이 ‘본회담’이 아니고 본회담과 본회담 사이에 개최된 조금은 덜 공식적인 ‘수석대표회담’이라는 징검다리 역할이었음을 감안하면 사실 불능화 로드맵이 합의 도출되기엔 부적절한 면이 있다. 형식상 본회담이 아니고 수석대표회담이었음을 간과한 채 이번 회담에서 불능화의 명확한 시한과 스케쥴이 나와야 한다고 애써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실 불능화 과정에서 북한의 약속 불이행을 미리 전제하고 북핵해결의 평화적 과정을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이번 회담은 언론발표문에서 밝힌 대로 2.13 합의의 향후 조치에 대한 이행 의지를 서로 확인하는 성과가 있었다. 쟁점이었던 북한의 핵불능화 의지를 재확인했고 이에 대한 미국 등의 대북 상응조치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2.13 프로세스의 다음 단계에 대한 양측의 확고한 의지를 다졌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을 폄하하는 측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북경회담에서 북한은 연내 불능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했다. 특히 김계관 부상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직접 ‘조건이 맞는다면 연내 불능화가 가능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불능화에 대한 정치적 상응조치를 언급했고 5개국도 불능화의 단계에 맞춰 중유 95만톤 상당의 경제 에너지 지원을 할 것임을 다시 확인했다. 또한 다음 단계의 이행 의지를 확인한 전제 위에서 다음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이다. 일단 8월 중에 비핵화 실무회담과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 및 에너지경제지원 실무회담 등 5개의 워킹그룹 회담이 개최되기로 되어 있고 여기에서 북한의 불능화와 미국의 대북 정치적 조치 그리고 대북 중유제공 등의 종합적 타임 스케쥴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8월 중 구체적 논의를 거쳐 9월 초 그 결과를 가지고 이른바 ‘6자회담 본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되었다. 따지자면 6차 2단계 6자회담이다. 이번 6자회담의 결과를 놓고 비난했던 측이 언급했던 불능화의 명시적 시한과 구체적 로드맵은 바로 이 본회담에서 합의 도출될 것이고 또 그것이 적절한 형식이다.

 

결국 이번 회담의 평가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본회담이 아닌 수석대표회담이라는 징검다리 역할에 비춰 볼 때 핵시설 폐쇄 이후 6자회담 관련국이 모여 다음 단계의 상호 행동 조치를 허심탄회하게 심도 있게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매길 만 하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의 불능화 의지 재확인 그리고 미국 등의 대북 상응조치 재확인을 전제로 다음 일정을 구체적으로 합의한 점은 분명 2.13 프로세스의 일보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2. 6자회담 진화의 모습

 

최근 6자회담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6자회담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2002년 북핵 위기가 등장한 이후 그 해결 방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6자회담이었다. 1993-4년 1차 북핵위기가 북미 회담으로 진행되었던 것과는 달리 2차 북핵위기에서는 북미를 포함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6자회담이 문제해결의 공식 통로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의 6자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회담이 분화하면서 끈질기게 합의도출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뚜렷한 합의가 없어도 차수를 바꿔가며 1차와 2차 3차 회담이 진행되었지만 4차 회담부터는 논의하는 쟁점과 이슈가 일정하게 해결되어 합의도출이 될 때까지 같은 회담의 라운드를 바꿔가며 논의를 지속한 것이다. 이른바 같은 차수에 1단계 2단계 3단계 식의 연장 회담이 이어진 것이다. 이는 사실 6자회담이 단순한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이제는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성과물에 토대해서 하나라도 더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같은 차수의 회담 안에서도 정회와 재개를 반복하면서 단계를 바꿔가며 논의를 지속하는 진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3년 8월 1차 회담은 첫 만남으로서 북한이 핵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일괄타결 도식과 동시행동 순서를 제안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은 응대하지 않고 선핵포기만을 되풀이 주장했다. 2004년 2월에 개최된 2차 6자회담 역시 북미간 의미 있는 합의는 없었고 다만 회담 산하에 워킹그룹 회담을 설치해서 운영한다는 형식상 합의 진전이 있었다. 2004년 2월에 개최된 2차 회담은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실무협의를 가동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졌지만 여전히 미국은 구체적 협상안을 내놓기 보다는 북한에게 리비아식 모델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4개월 만에 다시 열린 2004년 6월의 3차 회담은 처음으로 미국이 5단계 해법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동결 대 상응조치 요구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3차 회담 이후 그 해 9월에 열기로 되어 있던 4차 6자회담은 미국의 리비아식 모델 요구를 비난하는 북한의 반발과 미국 대선일정 그리고 남한의 핵파문 등이 겹치면서 사실상 무산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5년 7월에 재개되었다. 1단계 4차 회담에서 북미는 상호 요구사항에 대한 일정한 의견접근을 이루면서 막판 합의서 문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일시 정회하고 2005년 9월에 다시 열린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결국 9.19 공동성명이 합의서명되었다. 북핵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가능케 하는 총론적 합의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6자회담은 처음으로 1단계 회담과 2단계 회담이라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2005년 11월에 개최된 5차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위폐활동을 이유로 미국 재무부가 집행한 금융제재 문제가 불거지면서 9.19 공동성명의 합의이행에 관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5차 1단계 회담이 잠시 결렬된 것이었고 다음의 큰 고비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5차 회담은 다음 단계를 거듭하며 지속되었다.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대미 대결불사라는 극단적 위기고조를 겪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대북 유엔제재라는 강 대 강의 충돌을 서로 주고 받은 이후에 북한과 미국은 오히려 대화재개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급기야 2006년 12월에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협상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고 곧이어 개최된 2007년 2월의 5차 3단계 6자회담에서 드디어 9.19 공동성명의 실질적 합의 이행의 시작으로서 ‘2.13 초기조치’ 합의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2.13 합의 한 달 후인 3월에 6차 6자회담이 열렸으나 미국이 약속한 BDA 해결 지연으로 2.13 프로세스 자체가 미뤄지면서 결국 이 회담도 6차 1단계 회담으로 명명되면서 다음 연속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처럼 2003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의 6자회담을 지켜보면 갈수록 구체적 합의 도출에 전력을 다하고 실질적인 합의가 마련될 때까지 같은 차수에서도 단계를 이어가며 회담의 연속성을 지속해가는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열린 북경에서의 6자 수석대표회담 역시 3월의 6차 1단계 6자회담과 9월로 예정된 6차 2단계 6자회담 사이의 징검다리로서 수석대표들간의 진지한 의견교환의 장이었다. 그리고 6자회담의 진화와 관련해 이번 회담이 돋보이는 것은 6자회담이 같은 차수에서 단계를 거듭하며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과 함께 이제는 본회담 사이 중간 중간에 수석대표회담이라는 더욱 효율적인 브레인 스토밍의 장을 활용하는 또 다른 진화의 모습을 예상케 한다는 점에서이다.

 

그동안 간간히 6자회담이 결렬되었다가 재개될 때는 거의 대부분 북중미 3자 수석대표의 회동에 의해 다음 회담 일자를 잡는 게 일반적이었다. 장기간 무산되었던 4차 6자회담을 2005년 7월 개최하기로 한 것도 북중미 3자의 북경회동에서였고 2005년 11월 5차 1단계 회담 이후 오랜 갈등 끝에 2006년 12월 5차 2단계 회담을 열기로 한 것도 북중미 3자 회동을 통해서였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는 6자회담이 회기를 연속해가며 합의도출에 나서려는 끈질긴 진지함을 보이는 것 외에 본회담 말고도 실용적인 실무회담과 사전 의견교환용인 수석대표회담의 다양한 방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다양한 형식의 회담틀 가동은 금년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북미 양자회담의 병행 역시 포함된다. 사실 지난 해까지 비관적이었던 6자회담이 북핵해결의 진전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 데는 북미 양자간 생산적 회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 1월의 베를린 양자회담이 사실상 다음 달 6자회담의 2.13 합의를 이끌어 냈고 3월 초의 북미관계 정상화 뉴욕회담이 나머지 실무회담을 유인해냈다. 마찬가지로 BDA 해결 직후 힐 차관보의 방북과 평양 양자회담이 핵시설 폐쇄와 이후 2.13 프로세스의 진전을 추동하고 있다. 이번 수석대표회담에서도 북한과 미국은 회담 전날 상대방 대사관을 오가며 오찬까지 겸하는 긴밀한 양자회담을 진행했다.

 

결국 6자회담은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을 거쳐 단순히 만나기만 하는 회담을 넘어 합의도출이 안되면 다음 라운드를 지속하면서 끝까지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적 진화를 이루었고 이제는 여기에 더하여 6자회담 본회담뿐 아니라 수석대표회담과 각종의 실무회담 그리고 북미 양자회담을 병행하는 형식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희망과 낙관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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