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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사회주의 유제의 역설과 남북 경제협력 – 장경섭 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7.09.11

 

사회주의 유제의 역설과 남북 경제협력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7월 중순에 방콕에서 세계 발전문제에 비판적, 자성적 목소리를 내어 온 학계 및 국제시민운동단체들이 공동으로 아시아 경제위기 10주년을 돌아보는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필자는 여기에 참여해 한국의 급속한 거시적 경제회복 이면에 심각하게 대두된 경제적 양극화 및 사회해체 문제를 발표하고, 아시아 각국의 경제·사회적 변화들에 관해 학습할 기회를 가졌다.

 

발표를 위해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실태 자료들 및 관련 연구성과들을 검토하면서 한국사회의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비관적임을 깨달았지만, 10여년전 함께 외환위기를 겪었던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현실은 그야말로 절망적인 것이라고 현지 학자들이 전했다. 그런데 인근 베트남의 경우, 한때 이웃들 외환위기의 간접적 영향을 받아 약간의 경제 침체를 겪기는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안정된 경제성장세와 경제정책의 자율성 및 안정성 그리고 여기에 수반된 사회적 활력이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라고 소개되었다. 여러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적 국제경쟁력에 치명타를 가한 중국의 수출대국화도 베트남이 넘지 못할 파고는 아니었다.

 

베트남의 성공 비결에 관한 토론에서 본인은 중대한 역사적 역설 하나를 발견했다. 베트남의 탈사회주의 시장경제적 발전전략의 중요한 정치·사회적 조건들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사회주의의 유제라는 점이다.

 

우선 사회적인 정당성과 내적인 통합성 그리고 대외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새로운 국정목표로서 과단성과 일관성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국가(정치세력)가 존재한다는 것이 현대 정치사에서 결코 흔한 일이 아니며 특히 인근 동남아 사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 및 대외무역을 바탕으로 발전을 추구할 때 이른바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의 주도적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베트남에서 이처럼 안정되고 강력한 국가의 존재는 핵심적인 발전자산(developmental resource)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성공한 개발국가들이 정치적 권위주의로 인해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이는 별도의 정치발전상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며, 베트남 사회의 경우 베트남 인민들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이 존중되어야 할 사안이다. 다른 한편으로 좌파정권들이 이념적 경직성으로 인해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는 발전전략을 구사하다가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데, 베트남 공산당처럼 민족주의혁명세력으로서의 성격이 우월한 경우 (외래)이념 중심에서 (민족)현실 중심으로 정책전환을 하는 데 훨씬 유연하다.

 

둘째,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사회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아 온 것과 같은 과두(寡頭)적 토호세력이 베트남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적 공로이다. 대신에 베트남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들이 평등하게 분배받은 토지에서 안정되게 생활하며 지역 단위에까지 효과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국가의 산업화 정책에 조응해 점진적으로 산업시장경제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은 역시 앞서 발전에 성공한 여러 동아시아 사회들의 경험을 떠올린다. 한국사회의 경우,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군정의 실질적 명령에 의한 토지개혁 등의 역사적 우여곡절을 거치며 과두적 토호세력이 소멸되다시피 했고, 요즈음의 베트남처럼 대다수 인구가 농촌에서 비교적 평등한 생계농업을 통해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 정책을 맞게 되었었다.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도 복잡한 정치적 역사가 결과적으로 혁명에 준하는 사회변화를 귀결시켰었다. 반면 동남아, 나아가 중남미 여러 나라들에서 농촌 경제·사회 구조의 왜곡이 경제발전 및 사회통합의 최대 장애물임을 수많은 학자들이 지적해 왔다.

 

셋째, 베트남의 경우 한국, 대만보다 부존자원이 훨씬 풍부한 나라이지만, 그래도 최근의 경제발전은 역시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에 바탕을 둔 노동집약적 산업화 및 수출증대가 핵심이다. 그리고 베트남 인구의 (낮은 소득수준을 감안할 때) 매우 양호한 교육수준, 건강상태, 노동윤리, 조직생활 경험, 성평등성 등 산업노동력으로서의 훌륭한 자격조건이 바로 사회주의 체제의 성과물이라는 이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베트남 인민들의 이러한 조건 때문에 베트남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대만족을 표시해 온 것이다. 인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최소한의 교육, 건강 등이 사회주의 베트남처럼 보편적인 시민권적 권리(citizenship rights)로서 보장이 되었다면, 그들의 발전수준은 이미 달라져 있을 것이다.

 

넷째, 토지, 석유 등 핵심적 희소 생산요소들의 사회주의적 공공 소유가 적어도 국가가 합리적 발전전략을 구사하는 범위 내에서는 투기 봉쇄를 통한 생산자원의 효율적 배치를 가능케 하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복지를 최대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자원부국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고질적 저발전(underdevelopment), 그리고 최근 한국 등에서 부동산 투기에 수반한 물가고에 따른 산업경쟁력 추락 등의 사례를 살펴볼 때, 희소 생산요소들에 대해 공유제의 골간이 유지된 적절한 소유·관리 체제를 개발함으로써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한 중대한 경제·사회적 조건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찬의원이 국무총리로서 베트남을 방문하여 토지 공유제의 골간을 절대 허물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 같다. 많은 자원부국들에서 그 자원에 관련된 이익을 독식하려는 과두적 토호세력들이 자기보호를 위해 정치질서와 국가정책을 상습적으로 유린함으로써 아예 국가경제 전체가 파탄나기까지 하는 현실이 베트남에서 재현될 것 같지는 않다.

 

이상에서 논의한 베트남의 여러 특징들이 결코 본격적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강력한 지도력, 생산자원 공유제 등은 경우에 따라 오히려 경제적 재앙의 요인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 경제위기로 얼룩진 동남아 지역 전반을 개관할 때, 베트남이 예외적인 안정적 발전을 구가하고 있는 사실은 사회주의적 유제들이 탈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어 온 역사의 역설을 빼놓고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등소평 시대 이후의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북한의 경우는 왜 대부분 경제발전(회복)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여전히 인민들의 집단적 굶주림을 걱정해야 할 상황인가? 여기에는 북한정권의 경제발전 전략의 내용상 소극성 혹은 보수성도 작용할 것이고,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및 정치군사적 압박의 효과도 작용할 것이고, 북한정권의 과다 군비지출에 따른 여유 재원의 고갈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자체에서 유발된 원인이 결정적인 것 같다.

 

좀더 정확히 말해, 스탈린 사회주의식 산업정책의 북한에서의 성공이 결과적으로 총체적인 경제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한때 사회주의권 내부에서 ‘경제기적’을 이룩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시킨 스탈린식 국영중공업 체제가 이제 국가의 주요 경제자원을 소진시키고도 인민 복지를 위한 생산적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스탈린식 산업정책(Stalinst industrial policy) 자체가 사회주의 원리에 부합되거나 바탕을 둔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겠지만, 적어도 사회주의자들의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결국 스탈린의 모국 러시아가 전면적 스탈린식 산업화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구조적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회주의 산업화에 뒤쳐졌던 베트남과 중국이 새로운 방향의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도 북한도 역사적 폐기물이 되다시피 한 국영중공업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재활시키는 데에 아무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에서 탈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된 사회주의의 유제들이 북한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산업체제의 개혁과 재활에는 그다지 요긴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북한의 딜레마에 남북관계는 어떤 변수가 되는가. 북한 입장에서 남한과의 경제협력 내지 경제통합이 ‘죽은 자식 살리기’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과 중국이 한국과 이룩해 온 활발한 경제관계의 내용을 따져볼 때, 그리고 남한 기업들의 기본적 이해관계를 따져볼 때, 북한의 탈사회주의 시장경제 추구가 전제되지 않은 남북 경제협력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남한과의 경제협력 없이도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탈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이론적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의 성공했던 사회주의 산업경제가 역설적으로 야기하는 현실적 제약들로 인해 그 진척이 훨씬 더딜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남한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해서 북한 노동력의 우수성 등에 큰 만족을 표시하기도 한다. 탈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이 북한정권의 새로운 노선으로 분명히 자리 잡을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사회주의 유제가 갖는 역설적 효용성이 극대화되기를 그들 스스로 바랄 것이고 외부의 경제협력 상대들도 바라야 할 것이다.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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