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6자회담의 모멘텀은 지속되어야 한다 – 황지환 선임연구원
6자회담의 모멘텀은 지속되어야 한다
황지환
서울대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핵 6자회담의 제6차 2단계 회의가 오는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다. 원래 지난 19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알려진 6자회담이 갑자기 연기된 것을 두고 그동안 상당한 논란이 있어왔다.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던 5만톤의 중유 공급이 지연되어 북한이 개최를 반대했다는 설명이나, 최근 미국·중국·러시아 핵 기술팀과의 협의이후 북한이 실무적인 준비를 위해 시간을 더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2.13 합의의 2단계 이행에 관한 낙관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다. 반면 최근 불거져 나온 북한-시리아 핵거래설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발언에 의한 설명은 핵문제에 관해 북미간의 견해차가 여전히 클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우려에 기초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6자회담의 재개가 곧 다시 발표됨으로써 최악의 예상은 불식시켰지만, 이번 논란은 여전히 북한 핵 위기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과 6자회담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최근 6자회담의 상황은 과거 2002년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이나 2005년 BDA 문제가 불거졌을 때처럼 북미간의 위기가 점진적으로 확산 및 고조되는 악순환(vicious cycle)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기대가 높아지는 선순환(virtuous cycle) 과정 속에 있다. 이번 6자회담의 갑작스런 연기에 대해서도 당사국들이 대체로 큰 문제가 아니며 빠른 시간 내에 재개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점도 그렇다. 더구나 2.13 합의 초기 BDA 문제 해결 이행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1단계의 합의이행은 기대한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얼마 전 방북한 미·중·러 핵기술팀과 핵시설의 불능화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시킨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미 2단계 합의 이행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기론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이 이번 6자회담에서 북미간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핵커넥션의 사실유무 확인이 분명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내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시리아 관련 의혹이 확대된다면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핵거래설은 고농축우라늄 의혹에 이은 또 다른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 사실유무를 떠나서 북미간에 이견이 존재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상황에서 핵물질과 기술의 이전은 북한 핵 문제에 남은 미국의 진짜 레드라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관적인 의미에서 북한 핵문제의 업그레이드를 의미한다. 미국은 현재 북한 핵문제를 동북아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거래설이 논란의 초점이 될 경우 미국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보다 심각한 카테고리 속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테러와의 전쟁을 냉전의 종식이후 가장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세계안보질서의 변환을 꾀하고 있다. 미국이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노력과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는 한 북한 핵 물질 및 기술의 해외 이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할 것이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거래설이 논란이 될 경우 그 후폭풍이 10월 초의 남북정상회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북핵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핵 이전 문제가 문제시 되지 않고 또한 실제 북한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은 뚜렷한 실체가 보이지 않고, 부시 대통령이나 미국의 고위 당국자도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과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사안은 아닌 듯하다. 또한, 미국 역시 현재 6자회담 이외에는 북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없고 6자회담을 통한 합의와 이행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에서 현재의 모멘텀을 지속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실제 이번 6자회담 직후에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해서라도 이번 회담에서 민감한 논의들이 충돌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2.13 합의가 구조적으로 북미간의 견해차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2단계 합의이행 문제는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영역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이번 회담은 비핵화 2단계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 및 대북 정치경제적 보상 문제에 대한 합의를 시도할 것이다. 이를 연내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지만, 2단계 합의이행은 수많은 논란과 도전을 각오해야 하는 긴장관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의 구조적 연결고리는 빠른 해결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2.13 합의 문제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고 북핵 문제의 해결 역시 이러한 동시이행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지만 결국엔 “닭과 달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원하겠지만, 북한에게는 핵 프로그램이 정권안보를 위한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미국의 대북 안보위협이 제거되지 않는 한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최근 6자회담의 선순환 과정은 이처럼 2단계 합의이행 논의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긴장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그 지속성 여부가 달려 있다.
황지환 서울대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