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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세가지 차원 – 신욱희 교수

뉴스레터/칼럼  칼럼  2007.10.11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세가지 차원

 

신욱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기대도 많고 우려도 많았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이제 그 성과와 합의의 실현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안보와 경제협력, 평화체제, 북핵문제, 한미동맹, 6자회담,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번영과 통일이라는 다양한 의제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복잡성에 대한 이해는 최소한 세 가지 차원의 고려를 필요로 한다. 그 첫 번째는 국내정치의 차원이다.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기고 진행된 정상회담은 당연히 대북관계가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걱정을 수반하였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결과,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선주자 중 뚜렷한 수혜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내용이 모두 국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주제인 것은 아니다. 선언문 2항의 법률적 장치의 정비 부분과 국가보안법의 문제, 3항의 서해 평화수역 부분과 북방한계선 문제, 그리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논의 부재 등은 이른바 남남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결국 국내정치적인 차원에서의 합의 도출은 여전히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제정치의 차원이다. 정상회담에서의 “민족끼리” 원칙의 재천명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가 국제정치적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6자회담의 중심축은 남북한관계가 아니라 북미관계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4항에서 핵문제에 대해 남북한이 본격적인 논의를 피한 채 6자회담의 진전사항의 이행에 충실하기로 한 점은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1차 북핵 위기시에 한국이 지나치게 남북한 사이의 채널을 통한 해결을 강조하여 오히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 위해 “3자 혹은 4자” 정상들이 만날 것이라는 4항의 부분은 사실상 어떤 국가가 당사자인가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문제는 이후 중국의 유감 표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북핵문제의 해결과 평화체제의 구축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이 양자의 선후문제에 대한 북미간의 갈등 해소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평화체제 논의에 따른 북미관계 개선의 과정에서 나타날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남북한과 미국이 어떠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등의 핵심적인 사항들은 제 2차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는 아직도 답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이 단순한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진전을 보인 부분은 세 번째의 경제적 차원에서이다. 남북한 정상은 선언문 5항에서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개성공업단지의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통행, 통신, 통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반 장치들을 완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상호의존의 확대가 양측의 협력을 증대시킬 것이고, 북한의 경제적 변화가 사회적, 정치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진일보하여 실제적인 협력의 분야와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 이행의 수단과 주체가 결국 한국의 재원과 기업이라는 점에서 좀 더 명확한 이익과 비용의 대차대조표가 요구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금번 정상회담에서 등장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추구해 온 경협을 통한 북한의 “개혁과 개방” 유도라는 목표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조정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함께 모색하였지만 결국 연방의 해체를 맞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을 수행했던 한 관료는 필자와의 면담에서 북한이 개혁, 개방을 선택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망하고, 개혁, 개방을 선택하면 장기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북한의 딜레마가 부분적으로 핵개발이라는 결과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핵문제의 해결과 경협을 통한 공존 단계의 명확한 연결을 통해 서로의 위협인식을 상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사실상 명확하지 않다. 흔히 보수는 안정을 원하고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보수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진보는 현상변경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한 현상유지의 한계와 급격한 변화의 문제점에 대해 모두 동의하며, 그 결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현상변경, 즉 평화적 전환이 양자의 공통분모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제 2차 정상회담은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차원에서의 조율이 있어야 하며, 이는 설득과 조정, 의도와 능력, 그리고 목표와 수단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한 나라의 정부는 한편으로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다른 편으로는 안보와 경제를 연결하는 고리의 역할을 하며, 대통령은 그 수반으로서 국가적 수완(statecraft)을 발휘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의 현재는 국내정치적인 대립, 국제정치적인 제약, 경제적인 한계 속에 놓여 있고, 우리는 아직도 과대망상과 패배의식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니버(Niebuhr)는 한 기도문을 인용하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 2차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에서도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함께 가진 전략가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신욱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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