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이 간다] 통일은 헌법적 가치지만 MZ 세대는 이미 ‘반통일’이 주류
김정하 논설위원
1980년대 운동권 민족해방(NL)계열의 상징적 인물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 “통일, 하지 말자”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전대협 의장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때까지 입만 열면 통일을 외치던 그가 갑자기 노선을 180도 바꾼 것은 올 초 북한 김정은의 ‘적대적 2국가’ 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종북(從北)인 줄 알았더니 충북(忠北)이었냐”(오세훈 서울시장)며 맹렬히 비판했으나, 진보 진영 일각에선 본격적으로 ‘반통일’을 선언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통일 불필요’ 35% 역대 최고치
통일 반대 이유 1위 경제적 부담
통일은 이익 43%, 불이익 57%
통일 기대심리 갈수록 희미해져
“통일의 혜택 알려주는 교육 필요”
논설위원이 간다
통일 찬성론 6년 연속 하락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진보와 보수의 통일의식 역전 현상
2018년 통일 필요성 설문에서 진보층은 필요 66.6%·불필요 11.6%로 압도적으로 통일 지향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진보층에선 2020년 이후부터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매년 빠르게 증가해 올해는 필요 39.2%·불필요 37.3%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는 2019년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회담이 대실패로 끝난 뒤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층에서도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증가하긴 했지만, 진보층보다 변화 정도가 덜하다. 보수층은 2018년 필요 53.0%·불필요 24.7%였고 올해는 필요 42.6%·불필요 28.0%였다. 이념 성향에선 진보와 보수의 통일의식이 역전된 것이다.
성별로도 차이가 있었는데 남성은 필요 41.7%·불필요 31.4%였지만, 여성은 필요 31.9%·불필요 38.6%였다. 이를 2023년 조사와 비교해보면 당시엔 남성은 필요 46.6%·불필요 28.5%였고, 여성은 필요 41.0%·불필요 31.2%였다. 1년 사이에 여성 쪽에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증한 것이다. 김범수 원장은 “젊은 층에선 남성보다 여성이 진보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내용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로는 가장 많은 응답자가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33.9%)을 꼽았고 이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27.9%), 남북 간 정치체제의 차이(19.2%), 남북 간 사회문화적 차이(14.6%), 통일로 인한 주변국 정세의 불안정(4.3%) 순서였다. 특이하게 이 순서는 전 연령대에 걸쳐 동일했다.
통일 불가능 39%, ‘30년 이상’ 31.4%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심리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2018년 조사에서 ‘통일이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20년 이내(28.0%)와 10년 이내(25.7%)가 1·2위였고, 불가능하다(14.0%)와 30년 이상(12.5%)는 소수였다. 그러나 올해 조사에선 불가능하다(39.0%)와 30년 이상(31.4%)이 압도적으로 1·2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30년 이내(13.0%), 20년 이내(10.5%)가 뒤를 이었다. 성·연령·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불가능하다’가 1위였다.
‘통일이 한국에 얼마나 이익이 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엔 43.0%가 ‘이익이 된다’, 57.0%가 ‘이익이 안 된다’고 답했다. 특히 20·30대에서 ‘이익이 안 된다’는 답변 비율이 높았다. 19~29세에서 ‘이익이 된다’ 36.2%·‘이익이 안 된다’ 63.8%, 30대에서 ‘이익이 된다’ 35.7%·‘이익이 안 된다’ 64.3%였다. 이는 윗세대에 비해 ‘이익이 된다’는 대략 10%포인트 정도 낮고, ‘이익이 안 된다’는 10%포인트 정도 높은 수치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Z 세대)들의 통일의식을 분석한 통일평화연구원의 김택빈 선임연구원은 “기성세대의 통일회의론은 기존의 사회적 균열요인과 다양한 인구학적 변수가 영향을 미치지만, Z 세대는 뚜렷한 균열요인이 식별되지 않았다”며 “이는 Z 세대의 통일회의론이 Z 세대 내의 공통된 특징이란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Z 세대에서도 북한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통일인식이 긍정적으로 나타났다”며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교육보다 북한 체제와 주민들의 실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 통일 인식의 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층이 통일 긍정 담론 만들어야”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상대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2018년엔 54.7%가 ‘가능하다’고, 45.3%가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올해는 26.5%만 ‘가능하다’고, 73.5%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월드컵에서 북한과 미국이 대결한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겠냐’는 질문에 2018년엔 57.8%가 북한이라고 답했고 미국을 응원하겠단 응답자는 8.6%에 불과했다. ‘양 팀 모두 응원’은 17.9%, ‘어느 팀도 응원 않겠다’는 15.7%였다. 그런데 올해 조사에선 북한을 응원하겠다는 응답자가 27.9%로 줄었고, 미국을 응원하겠단 비율이 23.0%로 증가했다. ‘양 팀 모두 응원’은 19.7%, ‘어느 팀도 응원 않겠다’는 29.3%였다. 40대 이상에선 북한 응원이 미국 응원보다 많았으나, 30대 이하에선 오히려 미국 응원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은 지각 변동이 진행 중이다. 특히 MZ세대에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증한 것은 통일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김범수 원장은 “연금 문제처럼 통일 비용도 젊은 층이 가장 큰 부담을 지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는 것 같다”며 “젊은 층의 통일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선 통일을 단순히 민족적인 사명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통일이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에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는 지 구체적인 수치로 확신을 심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젊은 층은 사회 분위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이 통일에 대해 자꾸 긍정적인 담론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