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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북협력 민간단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 – 윤지현 부원장

뉴스레터/칼럼  칼럼  2024.04.01

남북협력 민간단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

윤지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식품영양학과 교수

통일부를 통일청으로 격하할 수 있다는 보도가 들리더니, 통일부 예산은 전년보다 20% 넘게 줄었다. 특히 남북교류와 협력을 위한 예산이 대폭 축소됐다. 북한은 ‘두 국가론’을 천명하며 더 이상 통일을 논하지 말라 한다. 우리 정부에 질세라, 대남 대화, 협력 기구와 조직뿐 아니라 관련 법규마저 폐지했다. 필자가 대북지원 사업에 처음 참여한 2000년대 중반 이후 남북관계에 최저의 냉기가 느껴지는 요즘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논할 만큼의 전문성이 필자에게는 없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기에 신냉전이라 불리는 시대적 상황이 녹록지 않음은 이해한다. 남북 대화가 중단된 지 5년을 넘어서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마저 단절돼버린 작금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 정부가 자유롭지 못함을 안다. 통일부는 우리 민간단체들의 남북협력 사업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 활동을 위한 북한과의 초보적 접촉조차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정치적 부침에 따른 확대와 축소가 있었지만, 1995년에 시작한 민간단체의 남북교류협력은 거의 한 세대 가까운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구호적 성격의 ’대북지원‘으로 시작하여 ’대북개발협력‘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한반도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남북협력’으로 그 패러다임은 변해 왔지만, 민간단체들의 이러한 활동은 남북 간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와 통일의 근간 마련에 이바지한 1등 공신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기간의 대북지원과 남북협력 사업이 불투명했기에 이를 바로잡겠다 한다. 남북협력기금의 사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당해 마땅한 단체들의 존재로 인해 남북협력기금의 집행에 질서가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무질서가 문제라면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는가? 질서가 없다고 통째로 다리를 폭파하고 통행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기름을 지원한 자동차가 무질서의 원흉이라면 지원을 중단하면 된다. 질서를 잘 지킨 자동차의 주유도 중단하고, 폭파된 다리 밑에 디딤돌이라도 놓으려는 노력까지 막는 것이 웬 말인가?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남북 간의 대화가 부지불식간 재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이 온다 한들,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을 하루아침에 되살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지금처럼 남북교류협력의 디딤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교류협력의 장이 다시 펼쳐졌을 때 제대로 된 다리를 신속히 재건하려면, 민간단체들이 남과 북을 잇는 디딤돌로 남아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 주민의 영양개선사업과 같은 인도적 지원사업은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사업이 어려운 시기라면 민간차원의 사업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지속하며 그 성과를 이룬 노하우와 경험, 나아가 남북 당국과 주민을 이어줄 수 있는 끈을 보유한 민간단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러한 남북협력 민간단체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임을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여러 민간단체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 주민의 영양개선을 위한 사업에 참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남북협력 민간단체들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부는 더 이상 남북협력 민간단체들을 카르텔의 프레임으로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투자 관점으로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에게 묻고 싶다. 국정과제와 함께 국민에게 발표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겠다”던 18번째 약속을 지킬 의지가 지금도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제 남북협력 민간단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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