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평화학포럼]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 일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16:00-17:30
- 장소: 온라인 화상회의(ZOOM)
- 발표: 백지운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 좌장: 백원담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 주제: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백지운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를 모시고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로 제28차 평화학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백원담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환영사와 함께 포럼의 막을 올렸다.
이번 포럼에서 백지운 교수는 반세기 이상 공적 서사의 주변을 배회하던 ‘항미원조 전쟁(한국전쟁의 중국식 관점)’이 최근 대중의 집단 기억으로 귀환한 경과와 의미를 중국의 영화, 드라마, 문학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백 교수는 “중국은 1954년 헌법을 만들 때 ‘항미원조 전쟁’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였지만, 1975년 수정헌법에서 삭제되었다”라고 설명하며 “1980년대 이후 교과서에서는 항미원조에 대한 언급이 거의 부재하다시피 하다가 2000년대 들어 국가지도자의 기념 담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진핑 집권 이후 이를 적극적으로 기리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백 교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파간다 수단은 영화”라고 설명하며 “주목할 점은 1980년대 이전 시기까지 국공내전에 관한 영화는 활발히 제작되었던 것에 비해 당시 항미원조 관련 영화는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 교수는 “그러다 2010년대에 들어 조용히 해금되기 시작했고,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라는 강력한 대중 교양 수단이 등장하며 항미원조 전쟁 관련 자료가 다양해졌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때 채집한 구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훗날 항미원조의 국가 서사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라고 강조하며 백 교수는 “2020년대는 이러한 국가 서사가 전면적으로 귀환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 교수는 항미원조 전쟁을 다룬 여러 영화 중 <상감령>(1956)과 <영웅적인 아들딸>(1964), <장진호의 수문교>(2022)를 소개하며 “혁명 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영화에서 그리는 영웅의 상이 점차 바뀌어 왔다”라고 강조했다. 우선 백 교수는 “저격능선-삼각고지 전투를 다룬 <상감령>에서는 ‘적의 토치카를 격파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황지광(黃繼光)’이라는 소년 통신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라고 설명하며 “당시 인민일보 기사에서는 황지광을 ‘마트로소프식 영웅’으로 일컬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백 교수는 “뒤이은 영화 <영웅적인 아들딸>에도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영화는 이름없는 영웅 왕청과 그의 여동생 왕팡의 이야기로 전개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중국 현대문학사의 거장이 혁명에 참가하지 않았던 아나키스트 작가 ‘바진’의 중편소설 「단원」(1961)이 원작”이라고 소개한 백 교수는 “지금까지도 항미원조 전쟁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에는 이 소설의 그림자가 굉장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백 교수는 “이 소설은 중국 공산당이 한국전쟁에 참가하며 대내적으로 내걸었던 슬로건인 ‘보가위국(保家衛國)’(집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킨다)에 대해 탐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고, “‘어떻게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어린 병사가 일순 산처럼 거대한 초인으로 변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백 교수는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소설 원작 속 숨은 주인공 ‘류정칭’이 아닌 ‘왕청’으로 대체하였다”라고 설명하며 그 이유를 “소설 속에서 자학적으로 그려지는 영웅의 상을 긍정적이고 낙관주의적인 혁명적 영웅의 상으로 교체하기 위함”이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백지운 교수는 2022년에 개봉했던 <장진호의 수문교>라는 영화를 소개하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혁명시대의 영웅은 이름없는 무명의 병사를 영웅으로 묘사하여 ‘공산주의적 신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내향적 서사를 그리고자 했다”라고 소개했다. 백 교수는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영웅을 ‘전랑적 영웅’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적 서사의 행간에 부유하는 애환, 비판, 회한 등 불순한 정동의 잔재를 소거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고, “이를 통해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의 공적 서사를 ‘승리의 전쟁’으로 치환함과 동시에 시진핑 시대의 ‘신시대’를 준비하고자 했다”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백지운 교수는 2020년 개봉한 <금강천(The Sacrifice)> 내에 나타난 독특한 플롯에 주목했다. 백 교수는 “원경에서 근경, 미경으로 이어지는 플롯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로부터 영향을 받은 기법으로, 원경에서 바라보는 ‘숭고한 희생’에 현미경을 댔을 때 드러나는 생생한 미시사를 나타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역사의 위대한 순간은 단순히 ‘영웅적 희생’이라는 공적 서사로만 환원되지 않은 여러 소쇄한 요소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백 교수는 “사사로운 감정과 우발적 요소 등 소인물의 시선으로 그간의 영웅 서사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백 교수는 “비록 <금강천>이 중국 영화의 한계상 반전 영화로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강한 애국 서사를 강조하는 데 항미원조 전쟁이 활용되고 있는 시진핑 시대의 현실적 조건 아래에서도 ‘반전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이를 눈여겨볼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