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평화학포럼]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 일시: 2025년 1월 9일 목요일 16:00-17:30
- 장소: 온라인 화상회의(ZOOM)
- 발표: 한모니까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 좌장: 정한범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과 교수)
- 주제: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한모니까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를 모시고 2025년 1월 9일 목요일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라는 주제로 제29차 평화학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정한범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환영사와 함께 포럼의 막을 올렸다.
이번 포럼에서 한모니까 교수는 정전체제의 핵심 요소로서 DMZ가 언제, 왜, 어떻게 구상되고 형성되었는지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였다. 강연의 서두에서 한 교수는 DMZ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경험에 주목하였다. “DMZ는 많은 이들에게 남북 분단의 경계선이자 최전방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으며, 군 복무의 고생담과 무용담으로 기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언급한 한 교수는, 그와 동시에 이곳이 “BBC가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요새화된 지역 중 하나로 보도할 만큼 고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존재하는 장소”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DMZ는 단순히 군사 공간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과 희귀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주목받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이러한 DMZ의 이중성과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한 교수는 “이 비무장지대가 정전협정의 결과물로서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제적 구상과 제도적 협상, 정책적 실천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복합적 공간”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였다.
이어 한 교수는 DMZ라는 공간이 실제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일반에게는 분명하지 않으며, 특히 “실제 DMZ 내부는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있어 연구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이로 인해 “접경 시·군 지역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만, 이를 곧 DMZ 연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문제점을 강조하며, “피상적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후 강연은 본격적으로 DMZ 개념의 역사적 기원으로 넘어갔다. 한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비무장지대의 시작을 1953년 정전협정에서 찾지만, 실제로는 1950년 10월, 중국군의 참전 직후 영국 외무부가 한반도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처음으로 구상했다”고 밝혔다. “영국 외무부 장관 어니스트 베빈(Ernest Bevin)이 이 제안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전쟁이 동북아 전체로 확전될 위험을 우려한 정세 판단이 작용했고, 그가 제안한 비무장지대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한만 국경 일대에 북한 정부와 무장 해제된 북한군이 임시 행정을 맡는 형태’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같은 영국의 제안은 미국과 유엔, 그리고 중국, 북한 측에 전달되었으나 당시 맥아더는 “북한 지역의 일부라도 넘겨준다면 이는 자유세계가 당하는 최대의 패배”라고 강하게 반발하였고, 주미대사 장면 역시 “한국 정부의 영토와 이익을 희생하는 제안”이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비록 이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한반도 비무장지대 설치 구상이 점차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한 교수는 덧붙였다.
정전회담이 본격화된 1951년 7월 이후, DMZ의 위치와 범위, 관리 주체 등에 대한 협상이 구체화되었다. 북중 측은 38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10km 후퇴한 지역을 DMZ로 설정하고, “6·25 이전 상태로 민정을 복구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유엔군 측은 보다 북쪽에 위치한 20마일(약 32km) 폭의 비무장지대를 주장하였다. 결국 “군사적 현실을 반영해 정전협정 체결 시점의 접촉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씩 후퇴하여 4km 폭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게 되었다.
정전협정 제1조 제1항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을 획정하고 쌍방이 2km씩 후퇴함으로써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며, 이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는 완충지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정전협정 제13항에서는 72시간 내 군사 자산의 철수와 45일간의 위험물 제거(지뢰, 철조망 등)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양측 사령관이 보고하고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감독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한 교수는 “1953년 11월 3일, 제86차 군정위 비서장회의에서 유엔군과 북중 측이 군사분계선 표식 설치를 완료했음을 상호 통보했다”며,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1292개의 표식물로 구성된 ‘점의 연속체’”라는 점도 함께 소개하였다. 이와 함께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공동감시소조(Joint Observer Team)의 위반 조사 활동 및 판문점 인근 정비 절차 등 구체적 실천 사례도 다루었다.
강연 말미에서 한 교수는 1960년대 이후 DMZ의 실질적 무장화가 진전되었음을 언급하며,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로 설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DMZ는 사실상 무장지대가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1970년대 초반부터는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제안들이 남북 및 국제사회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DMZ는 단선적 결과물이 아니라, 한국전쟁의 여파와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정치적 갈등, 그리고 생태적 변화와 평화 담론이 축적된 복합적 구성물”이라며, “전쟁을 멈추고 정전을 유지하며 평화를 실험하는 공간으로서, DMZ의 역사적 층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하였다.